그 순간만큼은 진지했다고 믿고 싶은 자들의 어설픈 변명
무언가 한 가지에 꽂히다 보면 너무나 명백한 부조리도 인식할 수 없게 된다.
가즈오 이시구로의 단편소설 집 <녹턴> 안의 네 번째 이야기 <녹턴>은 그것에 관한 이야기이다.
우리가 꽂힌 무언가로 인해 본질을 잊는다는 것. 꽂혔다는 것은 그것의 치명성으로 인해 가끔은 논점을 잃고 본질이라는 매우 중요한 요소를 손쉽게 배제해 버린다. 이쯤 되면 그 본질이라는 것의 중요성도 희석되어 흐지부지되어도 좋다고 생각되는 매우 위험한 지경에 이르기도 한다.
주인공 크루너가 그 순간 매료된 건 뭐였을까? 뭐가 그를 그렇게 몰두하게 한 걸까... 막연한 <성공>이라는 것? 엄마와 정서적 교감을 나누던 그는 그도 모르게 토니 가드너의 팬이 되고 그의 전부인 마저도 막연한 동경의 대상이 되었던 건 아닐까? 아니면 그녀 주위의 영향력 있는 사람들에게 그를 소개해 주겠다는 기약 없는 그녀의 허황된 약속을 순진하게도 믿어버린 걸까?
그녀 린다 가드너를 보자면, 크루너를 돕기엔 지코가 석자다. 왕년이야 어땠는지 모르지만 제아무리 강력한 미모라도 23년의 세월 앞에서 그 미모는 어떤 수로도 젊음을 이기지는 못할 것이 뻔하고 마지막 발악으로 성형수술을 했다고는 하나 현대의학이 아무리 발전했었도 자연스러움에 견줄만한 미는 아직까지 이룩해 내지 못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보면 성형 부작용으로 성괴나 되지 않으면 그나마 다행인 것이다. 중년의 나이에 전남편과 서로의 늦어버린 <미래>라는 것을 고려해 사랑하지만 헤어졌다고는 하나 그것은 어쩌면 서로의 가치 하락을 세월의 흐름과 함께 인정하지 못한 비겁함에서 오는 회피가 아니었을까?
크루너는 어떤가?
여자 친구가 자기를 버리고 가면서 미안하니까 새로 생긴 그녀의 남자 친구가 모든 비용을 대서 그의 못난 외모를 바꿔줄 성형수술을 시켜주는 이런 웃지 못할 코미디를 본인도 창피하게 생각한 걸까? 그것마저도 거절할 수 없는 막바지에 놓인 자신의 처지를 애써 외면하려는 쪽팔림을 포장해 보려던 딴청이었을까...
그날 밤, 그녀, 린다와 크루너를 그토록 절실하게 몰아갔던 건 그 순간 그들의 시간성과 공간성이 맞아 파바박 불꽃을 피워준 공감대였을 것이다. 끝까지 내몰릴 대로 내몰린 자들만 아는 폐배감. 그렇지 않고서야 크리스마스 때마다 방영하는 미스터 빈의 칠면조를 뒤집어 쓴 그 장면에 버금가는 멍청한 칠면조 씬을 만들어 냈을 수 없다. 이시구로 그는 영국인이 맞았다.
애초 그가 그런 굴욕적인 제안을 받아들였던 건 음악에 대한 열정 탓에 입력된 잘못된 계산일 것이다. 모로 가도 부산만 가면 된다는. 성형수술도 린다와의 친분도 그것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었을 것이다. 잘못된 방법이기는 하나 한번 무언가에 꽂히면 사람은 앞뒤를 구분 못하는 모호한 시공간에 스스로 갇힌다.
처음부터 지앞가림도 못하는 린다를 따라가는 게 아니었다. 그녀가 과연 크루너의 음악성을 평가할 만한 안목이 있었던가? 안목까지 갈필요 없이 적어도 그의 음악을 들을 성의는 있었던 걸까? 그는 이미 알고 있었을 도 모른다. 어차피 그녀가 지니고 있다는 인맥이라는 것도 그들을 소개해주겠다던 약속도 모두 사기였다는 걸.
그리고 린다의 경우, 시간이 남아돌아 심심해서 꾸몃다기엔 감행했을 그 위험이 다소 위태로웠던 것으로 보아 상대적으로 젊은 크루너를 향한 어쩌면 본인이 갈망하는 젊음을 갖지 못할 것을 이미 아는 노인의 옹심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영악을 떠는 그녀가 모르는 것이 있다. 그녀를 위해 세레나데를 준비했던 크루너는 그녀를 알지만 그녀는 그, 크루너를 모른다. 그가 그의 남편을 도와 그녀가 우아한 척 슬쩍 넘기고 싶었던 그녀의 치부를 낱낱이 보아버렸다는 것을. 그것을 끝까지 숨기기 위해 작가는 그 둘을 붕대를 칭칭 감은 채로 서로를 못 알아보게 함으로써 작가 또한 가지고 있는 늙음에 대한 자괴감을 그런 식으로 감추었다는 사실을.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는 단편소설집 <녹턴> 안에서 다섯 개의 개별적 이야기에서 관통하는 한 가지 주제만을 다루고 있다. 바로 본인-독자 포함- 에게 닥친 늙음의 엿같음. 늙으면서 겪게 되는 마음은 언제나 청춘이나 몸이 안 따라주는 대서 오는 노인성 자기 분열. 말이 좋아 음악과 황혼의 아련함이지 끌끌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