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한땀 한땀

어디까지 뮤즈 덕?

<첼리스트> 가즈오 이시구로

by 조용해

위대한 예술가에게는 늘 잔뜩 과장되고 미화된 뮤즈에 대한 이야기가 가십처럼 따른다.

브람스에겐 슈만의 부인 클라라가 있었으며 베토벤에게는 이름 모를 불멸의 여인이, 로뎅에게는 까미유 클로델이. 각각의 예술가에게 그녀들은 때로는 고뇌를, 때로는 기쁨을 주며 사람을 들었다 놨다 함으로써 그들을 성마르게 했고 그 성마름이 예술혼으로 불태워져 종래에는 명작을 남기시고 지금은 다들 편안히 쪼르르 묘지에 누워계신다.


무릇 <뮤즈>라 함은 정상적이면 안 되는 자기들끼리의 어떤 공식이 있는 건지? 하나같이 정상적이지 않다. 뭐 남의 부인을 뮤즈로 평생 사랑한 브람스야 말할 것도 없겠고 베토벤의 그녀 역시 이름은 알려져 있지 않으나 친구의 부인으로 추정되며 지금까지도 가문의 비밀유지를 위해 이름 대신 불멸의 여인으로 불리워가며... 본인의 유산을 다 그녀에게 몰빵(?)해서 남길 정도니 그 사랑의 깊이는... 말해 뭐해. 돈가는데 사랑 간다고... 돈으로 따지면 그게 다 얼마야?? 여기서 잠깐, 뮤즈는 꼭 유부녀야 하는 거야? 나도 같은 유부녀인데... 누군 뮤즈가 되고 나는 뭐지? 가 되고... 그나마 걔 중 정상적인 호적이 깨긋했던 까미유끌로델은 기질이 <폭풍우> 같았다고 전해지니 그녀의 성깔머리는 가히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로댕을 얼마나 쥐 잡듯 볶았을 거야... 안봐도 비디오다.

각각 사연이야 어떻든 그녀들을 동기로, 정확히는 그녀들과의 사랑의 결과로 모두들 내로라하는 작품들을 쓰시고 그리시고 만드시고 가셨다. 트리거. 거기까지가 뮤즈의 역할인 거다.


그렇다, 가즈오 이시구로의 단편 소설집 <녹턴>의 마지막 이야기는 한 음악가의 뮤즈에 관한 이야기다.


한때는 첼로로 동네를 주름잡던 전도 유망했던 티보르는 유난히 더운 끈적한 여름에 그의 뮤즈 <연상의 그녀>를 만난다. 접근할 때부터 뭔가 어설프더니... 청년의 음악 선생을 자처하며 청년으로부터 뮤즈로 픽 당하지 않고 본인이 뮤즈를 자처한 케이스. 연상의 여인으로써 어필할 수 있는 모든 매력 -카리스마를 뿜어주시며 연애의 갑을 관계를 확실히 정리해가며- 은 일단 어필할 수 있을 만큼 다 어필해 주시고 화려한 말빨로 음악도 어찌어찌 넘어가 주시고

그러나 눈치 어쩔 거야? 아무리 맹해 보여도 티보르도 느낌이라는 것이 있었으니까... 적당한 시기에 사실은 첼로를 11살 이후에는 만져본 적도 없다고 지금까지 다 뻥이었다고 이실직고해주시고, 뭐 선생이 꼭 그 과목을 잘해야 하는 건 아니니까




고등학교 때 서울대 나온 수학선생님이 계셨다. 본인은 무지 똑똑해서 모든 수학 문제를 줄줄이 푸는데 문제는 우리에게 가르치는 게 꽝인 분이셨다. 일단 그 쉬운걸- 본인에게는- 못 푸는 우리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셨다. 그래서 늘 수업시간에 화가 나 계셨고 복장 터져하셨다. 우리는 이유도 없이 수학 시간이면 선생님의 눈치를 보느라 평소에 팍팍 돌던 잔머리까지 돌지 않는 총체적 난국에 빠지기 시작할 무렵, 선생님은 아기를 가져서 육아휴직에 들어가셨고 대타로 오신 기간제 선생님은 이름도 알 수 없는 지방대를 나오셨으나...! 벗뜨 그 어려운 수학 문제를 너무나도 쉽게 족집게 강사처럼 풀어 설명하실 줄 아는 똘똘이였다. 덕분에 그나마 수포자가 안되고 몇몇은 대학을 갈 수 있었던 건 모두 그 선생님 덕분이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티보르의 뮤즈 <그녀>가 첼로를 켤 줄 아는지의 여부는 일단 본질에서 비껴간다. 그녀는 뮤즈로써의 역할은 다했다고 본다. 적당한 때에 약혼자가 나타나 흔한 주먹다툼 한번 없이 쿨하게 그녀를 끌고 일상으로 돌아가주면서 치고 빠지는 타이밍까지. 모든 것이 완벽했다. 뮤즈로써. 뮤즈가 곡을 대신 써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녀에게 팽 당한지 7년 후 어딘가를 떠돌다 나타난 티보르는 직접적으로 말해주지는 않으나 더 이상 뮤지션은 아닌 걸로. 양복을 입고 나타날 때부터 대강 눈치는 채고 있었다.

시대의 거장들에게 뮤즈가 결과물에 영향을 미쳤다면 청년 티보르에게 뮤즈는 과정이었던 거댜.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말라고 당신은 언젠가 한번 누굴 위해 뜨겁게 타오른 적이 있나고!


뮤즈도 아무나 만날 수 있는 건 아니다. 남들처럼 뮤즈로 인해 위대한 음악가가 되지는 못했지만 그는 그녀, 뮤즈를 만나 그의 음악인생에서 가장 반짝반짝하고 아름다운 시절을 아름다운 풍경과 함께 보내며 뜨겁게 타오른 적이 있었단 말이다.


그거면 된 거 아닌가? 꼭 모두들 그렇다고 그마저도 위대한 음악가가 될 필요는 없었던 거다.아쉽게도 화자가 그가 망한 이유가 그녀 때문이라고 짐짓 원망하고 있는 그의 친구들 중 하나였던 관계로 이야기의 시점을 다소 초라한 곳에 맞추어 티보르를 욕되게 하였으나 만일 소설을 티보르 자신이 서술했다면? 그는 그녀와의 반짝거렸던 며칠에 시점을 맞추어 얼마나 어떻게 반짝거렸는지에 대해 화려하게 써내려 갔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가 초라해 지기 전 소설을 끝내버림으로서 우리는 그 초라한 일면은 영영 보지 못한 채 화려한 열린 결말에 열광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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