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소미나

아직도 북을 끌고 다니니? 이젠 좀 쳐보는 건 어때?

by 조용해

문득 아무도 없는 시골길을 걷노라면 잠바노와 젤소미나가 길 저 끝에 있기를 바라면서 걷게 된다.

재미있게 본 영화도 아니고... 사실 내용도 기억이 나지 않는 컬러 TV로 본 흑백영화. 아주 어렸을 때 잠깐 본 건지 끝까지 본 건지 조차 기억나지 않는... 그러나 한적한 시골길을 걷노라면 무채색의 도시의 쓸쓸한 골목을 돌 때면, 문득 그 장면이 스친다. 그리고는 무작정 냅다 그립다.


아무도 없는 길가에서 잠빠노와 젤소미나가 티격태격 사실은 잠빠노가 젤소미나를 구박(?)하는 장면. 내용도 기억 안 나면서 왜 그 장면이 자꾸 기억이 나는지 왜 자꾸 꺼내지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그들이 사랑이라고 왜 기억되는지도.


사회에 불만 있게 생긴 앤서니 퀸과 이름을 들으면 기억이 날만도 한 여배우가 연기한 조금은 모자란듯한 젤소미나가 그 길과 함께 내 기억 어딘가에 <아련함>이라는 폴더에 저장되어 있는 거 같다. 요즈음같이 옛날 영화 찾아보기 쉬운 세상에 손가락만 놀리면 찾아볼 수도 있는데 그러지 않게 된다. 그 기억을 잃게 될까 봐 그 기억에 다른 색이 입혀질까 봐 두렵다.




" 나는 너희들이 학교를 졸업하고 난 후에 나를 만나러 오지 않았으면 좋겠어"

국어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그는 우리 여고에서 이유 없이 인기가 있는 유부남 선생님이었다. 나도 좋아했는데 왜 좋으냐고 물으면 딱히 왜라고 딱 잘라 말할 수 없었다. 그냥 나보다 스무 살이나 많은 그를 왜 어린 내가 안쓰러워했는지, 그의 어깨가 왜 그렇게 아련하게 느껴지는지.

' 아니, 난 당신을 보러 올 거야 한 번은. 그냥 그러고 싶어. 어른의 눈으로 당신을 확인하고 싶어'라고 혼자 조숙하게 고백했었다. 그때 나는 일년후면 어른이 되는 매우 이상한 시간에 살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 그도, 나의 고백도 기억하지 못한 채 살고 있지만 지금까지 그는 내 기억 저편 어딘가에 왠지 멋진 국어 선생님으로 살고 있다 그의 말을 들었던 게... 부러 그런 건 아니지만 잘했다 싶다. 굳이 다시 찾아가서 현실을 마주해서 내 환상을 깨버리면 누가 좋았을까...



영화를 보지 말기로 했다. 내가 내 맘대로 편집한 기억일지도 모르지만 그대로 그렇게 두기로 했다. 그냥 그 희미함이 좋으니까 굳이 그것을 뚜렷한 무엇인가로 바꾸고 싶지 않다. 이유를 알 수 없는 그 그리움이 사라지지 않아주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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