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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용해 Mar 11. 2022

내사랑 후쿠시마

원제 < 후쿠시마에서 전하는 인사>

독일인 마리는 결혼 일주일 전에 남자친구의 절친과 잔다. 결혼당일 그 사실을 남편에게 스스로 말하고 바로 파혼당한다. 이후 일본 후쿠시마로 무작정 떠나와서 악극단 사람들과 공연을 다닌다. 그들은 원전사고로 많은 것을 잃은 후쿠시마 사람들을 위로하는 공연을 한다. 우연히 만나게된 왕년의 게이샤 출신의 사토미를 도와 그녀의 폭격맞은 집을 같이 치운다. 개인사로 상처를 안게 된 젊은 서양인 여자 마리와 재해로 상처를 안게 된 늙은 동양여자 사토미는 그렇게 동거를 시작한다. 누구의 상처가 더 큰지 아픈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리고 상처의 크기는 함부로 다른 누군가에 의해 제지는것이 아니기도 하다. 상처치유의 시작은 서로의 상처를 내보이는 것 부터 ...

이것에 언어는 그다지 중요한 역할을 하는것 같지 않다. 어차피 이심전심이라는 것은 말로 전하는 것이 아니므로. 말로만 전하려는 위로가 얼마나 공허한지 익히 알고 있는 나는 그들의 위로의 방식이 적잖히 마음에 들었다. 그들은 싸우면서도 위로했고 시니컬하게도, 면박을 주면서도 위로했다. 심지어 소리를 지르면서까지... 내게도 전해지는 위로가 그들에게 안 전해질리 없다. 

그러나 치유될수 없는 한지점에서 사토미는 마리를 내보내고 자신이 살기위해 게이샤 친구를 밀었던 그 나무에 목을 맨다. 당연히 영화적 우연으로 목매는 단 몇분사이 마리가 그사실을 목격하고 극적으로 살려낸다. 사토미는 그것을 계기로 자신의 상처를 더 마리에게 보여주고 보여주는것 만으로, 보는것 만으로 서로의 상처를 회복해 나간다. 

사토미가 옛친구들을 만나는 사이 마리는 톱으로 사토미가 목메었던 그 나무 가지만 잘라내고 독일로 돌아간다. 마지막에 서로의 헤어짐을 직감한 사토미의 납짝 업드린 인사는 많은 것을 이야기 한다. 너무 고마웠음의 동작. 덕분에 치유할수 있었다는 감사. 서투른 자세로 같이 인사를 하는 마리... 그러나 진심만은 서투르지 않은 방식으로 소통하고 영화는 끝이 난다. 

굳이 흑백으로 외로움을 표현안해도 됐었는데 하는 아쉬움은 좀 남는다. 아마도 감독은 동양에 필요이상의 신비감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를일이다. 


낯설음으로 위로를 받아 본적이 있는가? 아마도 있지 않을까? 그러기에 우리는 때로 심란할때 여행을 떠난다.  낯설음 속에 내 익숙한 상처를 던져버리고 오는것 만으로도 큰 위로가 되기 때문이다. 때로는 익숙함이 더 큰 상처로 다가올 때가 있다. 익히 아는 괴로움 이미 알것 같은 상처들을 마주해야 하는 현장, 그곳에 있는것 만으로도 숨이 막힐 때가 있다.


여행길에 조용히 곱씹으며 해결하고 오기도 하고 때로는 모르는 사람에게 털어 놓기도 하면서 익명속에 나의 아픔을 묻어버리고 온 기억들이 아마도 있을 것이다. 마리가 후쿠시마로 도망 온 이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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