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몰락
비 흡연자인 여성의 입장에서 남성 흡연자들을 보며 부러운 모습을 꼽는다면 당연히 담배 나눠 피기다.
그것만큼 상대와 빠르고 쉽게 친해질 수 있는 방법은 내가 아는 한 없는 것 같다. 특히나 요새 같이 흡연자들에게 가혹한 환경 속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한쪽 구석에서 담배를 나누어 피우는 흡연자들의 모습에선 마치 세상 끝으로 내몰릴 대로 내 몰린 자들만의 암묵적 자기 위로 같은 쓸쓸한 동지 의식이 엿보인다. 특히나 생존의 전장인 일터에서. 처음 만나 뻘쭘한 관계에서, 나도 뻘쭘하고 그도 뻘쭘한 사이에서는 더더욱이 그렇다. 새로 입사한 회사에서 삼삼오오 짝지어 담배를 나눠 피며 어색함을 무마시키는 그들을 보고 있노라면 나도 그들 중 한 명으로 끼고 싶다는 강력한 열망이 일곤 했었다.
별로 친하지 않은 동료의 부모님상을 전해 들은 뒤 핼쑥한 모습의 그를 복도에서 마주치던 날. 왠지 베란다 저쪽으로 몰고 가 말없이 담배 한대 나눠 피고픈. 내가 알고 있는 이 티 안나는 위로의 방법을 해줄 길이 없어서 못내 아쉬워했던 기억이 있다.
지금이야 기관지가 약해서 담배가 나와 선천적으로 안 맞는다는 사실을 인정해 버려서 단념했지만 호기심이 몽글몽글하던 시절. 담배연기를 그윽하게 내뿜던 과 동기에게 담배는 왜 피우는 거냐고 아련하게 물으며 동경에 마지않는 순진한 속내를 들켜버린 나는 순간 작가를 꿈꾸던 영악했던 그녀의 레이다에 걸려 그녀로 하여금 담배 한 개비에 내 시름을 얹어 날려 버리고 있는 중이라는... 적잖이 허세 쩔은 맨트를 날리는 만행을 저지르게 하고 말았다.
세월이 지나 다시 만난 그녀. 지난날 했던 자뻑의 맨트는 기억조차 없다는 듯이 아무런 감흥 없이 주섬주섬 담배를 챙겨 물던 모습은 소일거리 삼아 담배를 피우던 옛날 구식 할머니들의 그저 습관에 쩌든 남루한 모습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더 이상 그윽하지도 아련하지도 않았다. 왠지 그 허세만큼 현실에 쩌든 모습이 짠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