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어 간다는 것, 잊어지는 게 아냐. 각인된 흉터를 보면 알잖니. 세월이 흐를수록 그 흉터는 사라지거나 작아지는 것이 아니라 몸집 커가고 살이 붙을수록 그와 함께 커 가며 더욱 선명해지는 거야. 나이를 먹으면 잊었다고 생각했던 기억들, 상처들, 처참한 순간들, 그것들이 뿌리를 뽑지 못하고 우듬지만 잘라낸 까닭에 전 보다 더욱 키 크게 자라나는 거야. 스무 살 시절이 그리운 건 바로 그 때문이야. 바위라도 씹어 삼킬 수 있다고 자만했던 그 시절, 객기, 탄탄한 근력, 그 덕분에 상처를, 기억을 금방 까먹곤 했던 거지
김준한 장편소설 (혼멸)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