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km 잠수교 러닝코스

by 달려보자go

아침 8시. 영하 13도. 일기예보에 따르면 올해 들어 가장 추운 날이라고 한다. 하지만 날씨에 아랑곳하지 않고 반포한강공원에 달리러 나갔다. 역시나 추운 날씨 탓에 산책이나 달리기를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거의]라고 한 건 있긴 있다는 이야기다. 세상에는 날씨에 관계없이 자기만의 확고한 의식 같은 행위를 반드시 해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대부분 방한대비를 해서 나오기 때문에 생명에 지장은 없어 보인다. 하긴 우린 체감온도 영하 20도에도 출근은 하니까 뭐. 가볍게 몸을 푼다. 오늘은 새로운 코스를 달린다. 어제 미리 네이버지도 위성사진으로 충분히 코스를 검토했다. 참고로 나는 J성향이 강하다. 대체로 계획적이다. 나이가 들수록 그 성향은 더 강해진다. 충분히 숙고해서 계획을 수립하고 하나씩 일을 쳐나갈 때 만족감을 느낀다. 특히 제법 규모가 있는 일의 경우 세부적으로 잘게 나눠서 하나씩 처리한다. 한 단계를 마무리할 때마다 작은 성취감을 느낀다. 반면 계획에 없던 일들이 툭 튀어나오면 좀 스트레스를 받는 편이다. 하지만 인생은 그야말로 툭 튀어나오고 쑥 꺼지기 일쑤여서 모든 것을 절대로 계획할 수 없다는 것은 인정한다. 어디까지나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범위에서만 계획적일 수밖에 없다. 그래도 단점보다는 장점이 많다. 아무튼 오늘 코스는 이른바 <10킬로미터 잠수교 코스> 반포한강공원에서 동작대교 방향으로 달려서 한강대교를 건너 잠수교로 돌아오는 약 10킬로미터 정도의 코스다. 페이스는 무시하고 천천히 달릴 생각이다. 오늘도 부상없이 무사히 달려보자!

‘오케이! 출발!’ 추운 겨울 홀로 한강을 달린다. 언제나 출발은 설레고 기분이 좋다. 오늘은 어떤 새로운 풍경을 볼 수 있을까 기대된다. 달리기 시작한 지 5분 정도 지나 동작대교 부근에서 맞은편에 러너가 보인다. 인사는 하지 않지만 ‘추운 날씨에 고생이 많습니다’라고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다. 공교롭게도 러닝화도 같은 제품을 신고 있어서 왠지 모를 동료애를 느꼈다.

흑석동 부근 올림픽대로 아래쪽 산책로를 달린다. 한강이 얼었다. 따뜻한 계절에는 물고기들이 갑자기 튀어올라 깜짝 놀라게 하는 장소인데 오늘은 이렇게 얼었다. 그 많은 물고기들은 어디로 갔을까. 물고기도 추위를 느낄까. 쓸데없는 궁금증이 생겼다. 달리다 보니 어느새 몸이 풀리고 손끝, 발끝까지 따뜻한 혈액이 충분히 순환하기 시작했다. 발목, 무릎 관절이 부드러워지고 기분도 한껏 신나기 시작할 즈음 한강대교에 도착했다. 계단을 따라 한강대교로 올라왔다. 칼바람이 목덜미를 스치고 지나간다. 바람을 막아줄 구조물은 다리 난간뿐이다. 고개를 좀 더 숙이고 천천히 대교를 지나간다. 다리 중간지점에서 한강을 내려다본다. 오른쪽으로 흑석동 쪽을 바라본다. 내가 태어난 곳. 기억은 없다. 성모병원에서 태어난 것으로 알고 있다. 20년 전에 돌아가신 엄마가 생각난다. 저기 가파른 고개 산동네 어디쯤에서 삼 남매를 키우셨겠지. 난데없이 감상에 빠졌다.

태양이 옅은 구름 뒤에 있어 윤곽이 선명하지 않다. 한강에 비친 태양이 마치 빛나는 어묵 같다. 달리기를 멈추고 사진을 찍는다. 셀카도 찍고 풍경도 찍는다. 달리다가 걷기도 하고 구경도 하느라 심심하지 않다. 혼자서도 잘 논다. 나는 사람들이 많으면 기를 빨리는 스타일이다. 나이가 들 수록 혼자가 좋다. 달리기를 좋아하게 된 이유 중 하나도 혼자서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주말 아침에 이런 멋진 풍경을 혼자 볼 수 있는 것이다. 누가 옆에 있으면 온전히 빠져들지 못했을 것이다.

옆으로 차들이 쌩쌩 지나간다. 지나가는 버스에 승객이 나를 신기하게 쳐다본다. 아마도 내가 아니라 한강 풍경을 보는 것이겠지. 잠깐 딴생각을 하다 보니 땀이 식어간다. 움직여야 한다. 이러다 감기에 걸리지. 다시 달린다.

어느덧 대교를 건너 이촌한강공원 부근을 지나간다. 이곳 풍경은 또 다른 매력이 있다. 갈대숲이 많아 운치가 있다. 자연 생태계를 보전하려는 의도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보기 좋다. 마지막 구간인 잠수교에 도착했다. 러너들의 성지 같은 곳이다. 잠수교를 달려보는 것은 오늘이 처음이다.

에어팟으로 데이식스의 [행복했던 날들이었다]를 들으며 달린다. 차갑던 바람이 시원하다. 10킬로미터를 달렸다. 겨울이라서 급수 없이 달렸다. 한 겨울에 한강을 달리는 새로운 경험을 했다. 특히 한강대교를 달려서 건널 때는 짜릿한 기분을 느꼈다. 이제 영하 13도 까지는 달릴 수 있는 날씨가 된 것이다. 아무래도 앞으로 다양한 코스를 탐색하게 될 것 같다. ‘다음엔 좀 더 길게 달려봐야겠군.’ 상쾌한 기분으로 운동을 마무리했다. 점점 러닝에 빠져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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