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JTBC서울마라톤

처절했던 첫 풀코스

by 달려보자go


저 멀리 결승선이 희미하게 보인다. 마치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섭씨 20도. 11월 3일 낮기온 치고 지나치게 덥다. 마라톤을 달리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정오를 지난 햇볕이 따갑다.

눈이 살짝 풀리고 눈가는 축쳐졌다. 팔을 들어 올리기 조차 힘들다. 입안은 바싹 말랐고 입술에서 소금 맛이 난다. 거친 숨을 내쉬며 마지막 힘을 쥐어짜본다.

‘다 왔다. 조금만 더 힘을 내자.’

마라톤 41킬로미터 지점에서 나는 걷고 있다. 주변에 많은 주자들도 걷고 있다. 그들의 표정을 볼 수 없었지만 처진 어깨와 느릿해진 걸음에서 아쉬움과 피곤함이 배어 나온다.

‘이게 아닌데…. 걷고 싶지 않다.’ 하지만 다리가 돌처럼 묵직하다.

‘아…. 괴롭다.’ 그리고 목이 마르다. 아..

어느덧 결승선이 현실적이 될 무렵 응원하는 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쳐다볼 엄두가 나지 않는다. 고개를 돌리는 일도 버겁다. 걷는 모습이 부끄럽다.

큰 소리로 응원해 주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죄송하지만 하나도 힘이 나지 않는다. 그때 어떤 남자가 큰소리로 외친다.

“ 다 왔어요!! 걷지 마세요!!! 집에 가서 후회해요~~~~!!”

‘아… 그래… 요…. 미안합니다. 이미 뭔가 후회하고 있어요.‘

‘아까 탄천1교 업힐에서 힘을 아꼈어야 했어. 남들이 고개를 푹숙이고 힘겹게 올라갈 때 나도 그렇게 했어야 했어. 하지만 나는 보란듯이 사람들을 휙휙 제치고 치고 나갔다.

힘을 너무 먼저 다 써버렸어. 이런 바보같은…‘

‘이렇게 초짜 티를 팍팍 내다니. 유튜브 영상으로 코스분석을 더 열심히 했어야 했어. 이런…‘ 다 된 밥에 코를 빠드린다는 속담을 뼈져리게 느꼈다.

주먹을 쥐어보지만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몸 안에 모든 에너지가 고갈된 느낌이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불과 15분 전만 해도 계획한 대로 4시간 안에 풀코스를 완주하는 상상을 하고 있었다. 실패라는 암시조차 없었다. 첫 마라톤에서 서브 4는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런데 38킬로미터 지점부터 뭔가 잘못되었음을 감지했다. 그전까지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쥐가 나거나 숨이 많이 찬다거나 큰 문제가 없었다. 분명히 그랬다. 하지만 38킬로미터 지점 부근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는 구간에서 결국 퍼진 것이다. 경사가 심하지는 않지만 반복되는 업힐에서 결정적인 한방을 먹은 것이다. 급수대도 이제 보이지 않는다. ‘안돼.. 걸으면 끝이다…아..’

에어팟 배터리가 꺼질 때처럼 “또로롱..!” 하고 몸의 배터리가 나갔다. 결국 걷기 시작했다. 시계를 본다. 평균페이스 5분 40초. 지금이라도 다시 달리면 4시간 안에 들어갈 수 있다. 하지만 이미 다리는 걷기도 힘든 상황이다. 시간은 계속 흘러간다. 평균 페이스 5분 44초. ‘아.. 안되는구나… 방심했다. 이제는 어쩔 수가 없다. 아쉽구나..‘

건방 떨던 스스로를 비웃는 듯한 야릇한 웃음이 나온다.

어느덧 결승선까지 100미터가 남았다. 이제는 다시 달려야 한다. 사진작가들이 결승선에 들어오는 주자들의 모습을 찍고 있다. 전문적으로 마라톤 사진을 찍어서 판매하는 업체에서 나온 작가일 것이다. 사진은 대개 장당 5,000원에 판매된다. 비싸지만 항상 구매하는 편이다. 마라톤에서 사진은 중요한 요소다. 특히 마라톤 풀코스를 달리는 모습은 인생에서 제법 특별한 이벤트이기 때문에 남겨야한다. 어쩌면 남은 인생에서 가장 멋지고 건강한 모습이지 않을까.

‘그래 사진은 포기할 수 없지.’ 창피함을 무릅쓰고 양팔을 벌리고 고개는 15도 쳐들고 정면을 응시한다. 리오넬 메시의 골 세리모니처럼 포즈를 취했다.

그리고 마침내 결승선을 통과했다. ‘아…끝났다…’

조금 걸어가니 누군가 완주 메달을 목에 걸어준다. “감사합니다.” 그제야 마라톤 완주를 했다는 실감을 한다. 4시간 6분. 목표한 서브 4는 실패했다. 하지만 완주는 성공했다. 결승선을 멋지게 통과하는 모습을 수도없이 상상했다. 하지만 그 상상 속에 없던 장면을 연출했다. 2% 부족한 허탈한 모습으로 들어왔다. 그렇게 나의 첫 풀코스는 많은 아쉬움을 남긴 채 막을 내렸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