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일을 하는 게 취미

좋아하는 일로 하루를 보내는 기쁨

by 달려보자go

<좋아하는 걸 좋아하는 게 취미>라는 책 제목에 감탄했다. 누가 이렇게 멋진 말을 생각해 냈을까. <기록하기로 했습니다>, <평일도 인생이니까> 등의 에세이를 쓴 김신지 작가가 그 주인공이다. 작가의 글을 읽다 보면 “맞아! 나도 그러는데 “ 하고 공감할 때가 많다. 코드가 맞는 작가를 만나면 오래된 친구를 만난 듯 반갑다. 누군가 취미가 뭐냐고 물으면 “제 취미는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겁니다. 특히 책 읽고 달리는 것을 좋아합니다.“ 라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상상만 했을 뿐이다. 언제부턴가 취미를 묻는 사람도 없어서 스스로에게 물었다. 좋아하는 게 뭐예요?

내가 좋아하는 사소한 것들

점심시간에 도서관에서 책 읽기

카페에서 글 쓰고, 멍 때리고, 커피 마시기

마라톤 대회에 나가서 도파민 충전하기

알라딘 중고 서점에서 책 왕창 사기

아이들과 캠핑 가기

에어팟으로 음악 들으며 산책하기

커피 마시며 재즈 듣기

새벽에 한강 달리기

좋아하는 일들을 나열해 보니 특별한 게 없구나 하고 감탄하게 된다. 의외로 여행이 빠진 점은 나도 놀랐다. 좋아하는 걸 하는 데 돈이 많이 필요해 보이지 않는다.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특별하지 않지만 만족스러운 하루

토요일 새벽. 일찍 눈이 떠졌다. 쉬는 날은 평소보다 더 일찍 일어난다. 소풍 가는 날 일찍 일어나던 어린 시절의 습성은 아직도 유효한 것이다. 대충 세수를 하고 모자를 눌러쓰고 집 근처 카페로 향했다. 아침 7시에 문을 여는데, 오늘은 내가 첫 손님인듯했다. 유치원생과 초등학생 아이를 둔 아빠는 새벽 시간을 잘 활용해야 한다. 아이들이 아직 자고 있는 새벽은 오롯이 나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아빠들이 조기 축구를 하고 새벽 달리기를 하는 이유가 다 있는 것이다. “운동하면 건강해지고 좋잖아!” 정도의 말은 아이 엄마에게 통하지 않는다. “너만 좋잖아!”라고 할지도 모른다. 할 말 없게 한다.

따뜻한 라떼 한잔을 주문하고 항상 앉는 자리에 앉았다. 라떼의 하트가 망가지지 않게 조심스레 첫 모금을 마시고 부슬비가 내리는 창밖 풍경을 봤다. 비 오는 날은 차분해서 글쓰기에 좋다. ‘자, 오늘은 어떤 글을 써볼까’ 하고 손바닥을 슥슥 비비고 노트북을 켰다. 지난 9월 말에 참가했던 공주백제마라톤 후기를 쓰기 시작했다. 브런치 글쓰기의 방향을 일단 마라톤 후기로 잡고 있는데 영 재미가 부족하다. 재미를 최우선으로 추구하는데 아직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일단은 글쓰기의 리듬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장기적인 작업을 할 때는 리듬을 단절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리듬이 설정되기만 하면, 그 뒤는 어떻게든 풀려 나간다고 했다. 달리기도 처음에 습관으로 만들기까지 의식적으로 노력했다. 달력에 체크를 하고 달린 거리를 기록했다. 지금은 달리기는 마치 밥먹 먹는 일처럼 매일 하루도 빼먹지 않고 하는 일이 되었다. 글쓰기도 그렇게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뭐 그러면 언젠가는 적당히 재밌는 글을 쓸 수 있을 거라 믿고 있다. 그렇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마라톤 후기를 썼다. 어느새 아침 9시가 다 되어간다. 아이스아메리카노 한잔을 테이크아웃해서 집으로 향했다. 집에 들어서자 귀여운 딸 두 명이 아직 잠이 덜 깬 눈으로 티브이를 보고 있었다. 아내의 기분을 살펴보며 커피를 건넸다. 다행히 그녀의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재빨리 아침 식사 준비를 했다. 밥을 먹고 나니 비가 그쳤다. 소화를 시킬 겸 가볍게 달리기를 하고 왔다. 욕조에 물을 받아 반신욕을 하며 아침에 쓰던 마라톤 후기를 생각했다. 매번 쓰는 후기를 좀 더 실감 나는 중계처럼 써보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스포츠 칼럼을 참고해 볼까 하는 생각도 했다. 몇 가지 좋은 생각을 휴대폰 메모장에 기록하고 오후 일정 위해 외출 준비를 했다. 오늘은 수원화성 미디어아트를 보러 가기로 했다. 매년 수원시와 수원시문화재단이 주최하는 축제다. 공식 홈페이지 내용에 따르면 수원화성을 배경으로 정조대왕의 꿈과 비전을 현대적 빛의 예술로 풀어낸 야간 미디어아트 축제라고 한다. 우리는 축제도 보고 수원의 유명한 통닭도 먹기 위해 오후 4시 무렵 집을 나섰다. 행사장 근처에 주차를 하고 통닭집으로 향했다. 예상은 했지만 사람이 많았다. 한 시간을 기다렸다. 아이들이 그래도 잘 기다려줬다. 맛은 정말 평범했다. 도대체 왜 기다린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며 생맥주를 시원하게 한잔 마셨다. 기다린 이유가 충분해졌다. 배를 채우고 본격적으로 미디어아트를 구경했다. 화서문을 배경으로 펼쳐진 멋진 공연을 보고 집에 돌아왔다. 아이들도 피곤했는지 금방 곯아떨어졌다. 잠든 아이의 이마에 뽀뽀를 하고 내방으로 돌아왔다. 침대에 조명을 켜고 며칠 전 회사 근처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사 온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체호프 단편선을 읽기 시작했다. 기분 좋은 잠이 솔솔 왔다. 시각은 밤 열 시를 조금 넘었다. 내일은 새벽에 달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의 마지막 부분의 문구가 생각났다. ”눈앞이 캄캄한 그런 날이 아니었고, 거의 행복하다고 할 수 있는 그런 날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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