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195km 나를 다시 살게 하는 주문

나를 믿는 시간

by 달려보자go

어쩌다 시작한 달리기였다.

거창한 각오도 없었다.

그런데 정신을 차려보니 러닝화를 신은 지 두 달 만에 하프마라톤을 완주했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던 그 순간, 한강의 바람이 내 몸을 관통했다.

태어나 처음 느껴보는 종류의 자유였다.

그날 이후, 내 삶의 궤적이 조금 방향을 틀었다.

달리기는 일상의 중요한 루틴이 되었다.

신나는 일이 생긴 것이다.

이 벅찬 순간을 남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작은 짐볼 카메라를 샀다.

어설픈 달리기 영상을 찍어서 유튜브에 3편의 짧은 영상을 올렸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오 마이갓, 구독자가 4명이나 생겼다.

밤에 침대에 누워 새벽에 달릴 생각에 설렜다.

아침이 기다려지는 삶을 사는 것이 나의 꿈이었다.

비슷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평일에는 집 앞 수변공원을, 주말 새벽에는 한강을 달렸다.

달리다가 아름다운 풍경이 나오면 카메라에 담았다.

혼자 즐기는 달리기는 외로움이 아니라 온전한 자유였다.

영하의 추위도 달리기를 멈추지 못했다.

그렇게 나는 ‘달리는 사람’이 되어갔다.

겨울이 지나자 얼어붙은 땅에 따뜻한 봄이 내려왔다.

가벼운 옷차림으로 신발 끈을 묶고 나서는 길, 온몸의 세포가 행복하다고 아우성쳤다.

계절이 바뀌는 것을 피부로 그리고 코끝으로 느꼈다.

예전에는 보이지 않던 길가의 이름 모를 노랗고 하얀 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2024년 3월, 운명의 사건은 클릭 한 번으로 찾아왔다.

JTBC마라톤 접수가 ‘피켓팅(피 터지는 티켓팅)’이라는 말을 듣고,

될 리 없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신청했다.

결과는 덜컥 당첨. 기쁨보다 걱정이 앞섰다. 42.195km.

풀코스는 아예 다른 종목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대회까지는 8개월이 조금 안 남았다.

“내가 정말 할 수 있을까.”


독학으로는 한계가 명확했다.

지독하게 내성적인 성격이었지만 용기를 내서 러닝 클래스의 문을 두드렸다.

첫날, 수줍게 인사를 건네며 풀코스 완주가 목표라고 말하자 누군가 웃으며 대답했다.

“지옥 맛을 보게 되겠네요, 하하! “

사람들이 웃으며 환영해 줬다.

옆에서 누군가 자기도 이번에 첫 풀에 도전한다고 파이팅 해줬다.

클래스에서는 운동 전후 스트레칭과 부상 방지를 위한 방법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다양한 훈련 방법을 배웠다.

무엇보다 함께 달리니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일주일에 한 번 나는 사람들과 보폭을 맞춰 달렸다.

무더운 여름에도 풀코스 완주라는 목표를 향해 달렸다.

9월 말, 마라톤 훈련의 꽃인 장거리 훈련을 위해 홀로 한강을 달렸다.

마라톤의 마의 구간이라 불리는 30km 지점을 지나자 다리를 들어 올리기가 힘들어졌다.

뇌에서는 멈추라고 끊임없이 신호를 보냈다.

땀으로 온몸이 젖었고 입술이 짭짤해졌다.

눈을 찡그리고 버텼다.

그렇게 목표했던 35km를 달렸다.

몸이 휘청거렸다.

편의점 의자에 앉아 콜라를 목구멍으로 쏟아부었다.

목이 찢어질듯했다.

“오늘 거리에서 딱 7km만 더 달리면 되는 거야…”

마치 수능을 앞둔 수험생처럼 매일 달력의 디데이를 지워나갔다.

찬란했던 봄은 어느새 결전의 계절인 가을로 성큼 다가와 있었다.


드디어 상암 월드컵경기장, 수만 명의 러너가 내뿜는 열기 속에 출발선에 섰다.

인생에서 가장 길고도 고독한 싸움이 시작되기 직전,

나는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나를 몇 번이고 다시 살아나게 하는 주문이었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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