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를 시작한 지 고작 두 달.
하프마라톤을 접수했다.
계획에 없던 일이었다.
그저 평소 산책하던 길을 살살 달렸고,
어쩌다 10킬로미터 대회 메달 하나를 목에 걸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대회의 매력에 빠져버렸다.
결승선을 통과하고 느낀 그 묘한 감정이 다시 나를 움직였다.
홀린 듯 다음 대회를 접수해 버렸다.
한강 밤섬하프마라톤.
그때는 아직 하프마라톤이 요구하는 거리를 몸으로 알지 못했다.
출근하자마자 옆자리 후배에게 슬쩍 말을 건넸다.
“하프 접수했다. 같이 나갈래?”
후배는 잠시 나를 뻔히 보더니 웃었다.
그는 매일 5km를 꾸준히 달리는 러너였다.
짧게 “오케이.”를 외쳤다.
그렇게 우리의 무모한 도전이 시작되었다.
하프마라톤은 의지로만 달릴 수 있는 거리가 아니었다.
몸을 장거리 달리기에 적응시켜야 했다.
탄천을 따라 13킬로미터를 달렸다.
10킬로미터를 넘어서자 몸이 신호를 보냈다.
오른쪽 발가락에 찌릿한 통증이 와서 운동화를 벗었다.
발가락이 쪼여서 피가 잘 안 통했던 것 같았다. 신발이 작게 느껴졌다.
대회를 핑계로 발볼이 넉넉하고 카본 플레이트가 삽입된 새 러닝화를 샀다.
땅이 나를 밀어 올리는 듯한 탄성에 놀랐다.
‘역시 장비빨이란 게 있구나’ 싶었다.
그날 이후, 어둠이 가시지 않은 새벽길을 달렸다.
찬 공기가 폐 속으로 깊숙이 들어올 때마다 정신이 맑아졌다.
하프마라톤 도전이라는 명확한 목표는
평범한 일상에 활력이 되었다.
대회 당일, 11월 초의 여의도 한강공원은 흐리고
구름이 낮게 깔려 있었다.
비가 올 것 같지는 않았지만 하늘은 하루 종일 흐릴 것 같았다.
곳곳에 쌓인 낙엽이 가을의 끝을 알리고 있었다.
후배와 만났다.
회사에서 볼 때보다 훨씬 반가웠다.
우리는 나란히 출발선에 섰다.
레이스 전략은 단순했다.
10킬로미터까지는 힘을 아낀다.
그다음은 그때 가서 생각한다.
초보 러너다운 대책 없는 계획이었다.
좁을 길 위로 수천 명의 주자들이 줄지어 달렸다.
20분 정도를 달리자 몸이 가벼워지며
기분 좋은 땀이 배어 나왔다.
평균 페이스 6분 30초.
일정하게 달렸다. 3킬로미터 정도를 달리니 몸이 풀렸다.
뒤를 보니 후배는 벌써 지쳐 보였다.
눈으로 신호를 보냈다.
‘나 먼저 갈게.’
속도를 조금 올렸다.
성산대교 부근을 지날 즈음
오른쪽으로 한강이 시원하게 펼쳐졌다.
강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에어팟에서는 이적의 <하늘을 달리다>가 흘러나왔다.
가사에 맞춰 두 팔을 벌리고 잠시 눈을 감았다.
뜬금없이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가슴 벅찬 상상을 할 때마다 눈물이 고이는 습관이 터져 나온 것이다.
“왜 이제야 달리기를 시작했을까.”
2시간 6분.
하프마라톤을 완주했다.
예상외로 좋은 기록이었다.
후배는 나보다 10분 뒤에 들어왔다.
우리의 무모한 도전은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