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195km 풀코스 마라톤을 달리다.

by 달려보자go


상암월드컵경기장.

JTBC 마라톤 풀코스가 열리는 장소에 섰다.


지난 1년 동안 풀코스 완주를 목표로 달린 거리는 2,000킬로미터에 가깝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었고, 계획이 거창했던 것도 아니었다.

솔직히 말하면, 나 스스로도 여기까지 오게 될 줄은 몰랐다.


풀코스에 출전한 사람은 2만 명.

A조부터 F조까지, 기록에 따라 출발 그룹이 나뉘었다.

나는 마지막 F조였다.

그중에서도 가장 마지막 줄에 섰다.


목표는 단순했다. 완주.

결승선을 두 발로 통과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성공이라고 생각했다.

욕심을 조금 더 보태자면 4시간 이내, 이른바 서브 4가 두 번째 목표였다.


5시간을 넘기면 컷오프.

도로 통제가 풀리고, 더 이상 달릴 수 없다.

그땐 수송 버스를 타야 한다.

적어도 그 장면만은 남기고 싶지 않았다.


날씨는 믿기지 않을 만큼 좋았다.

맑고 선선한 가을 아침.

대회장은 축제처럼 들떠 있었다.

형형색색의 러닝복, 웃음소리, 가볍게 몸을 푸는 사람들.


젊고 역동적인 에너지가 공기처럼 퍼져 있었다.

이 많은 사람들과 같은 출발선에 서 있다는 사실에 기뻤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기 있는 마라톤 대회라는 말이

그제야 실감이 났다.


드디어 출발!

수많은 사람들의 응원을 받으며 달려 나갔다.


내리막에 들어서자 시야가 한 번에 트였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수만 명의 러너들의 등이 파도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사람들은 시야의 끝까지 이어졌고, 어디가 끝인지 알 수 없었다.

여기저기서 그 광경에 놀라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 양화대교에 진입했다.

파란 하늘 아래 한강은 느릿하게 흐르고 있었고,

대교 위로 시원한 바람이 정면으로 불어왔다.

땀에 젖은 얼굴과 목을 식혀 주는 바람이었다.


그 순간, 몸 안에서 무언가가 확 치솟는 느낌이 들었다.

이것이 도파민인가 생각했다.

대교 오른편으로 응원단이 많이 나와 있었다.


러닝크루의 깃발이 바람에 힘차게 휘날렸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었지만

나를 응원해 줬다. 엄지를 들어 감사함을 전했다.


여의도를 지나 서울시청 앞을 통과해 동대문으로 향했다.

평소라면 사람과 차로 가득했을 거리였다.

출근시간의 소음대신 러닝화가 아스팔트에 착지하는 소리만 일정하게 이어졌다.

서울 한복판을 이렇게 달릴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어느새 20km 돌파.

컨디션은 아직 여유가 있었다.

이미 결승선을 통과한 나를 상상하자 괜히 입가에 웃음이 걸렸다.

이때는 아직 모르고 있었다.

마라톤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잠실대교가 저 멀리 보였다.

그 너머로 롯데타워가 웅장하게 서 있었다.


30킬로미터 지점을 통과했다.

에너지 고갈 현상이 시작되는 거리다.

주변에 걷는 사람들이 급격하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나는 비교적 무난하게 페이스를 이어갔다.


평균 페이스 5분 35초.

이대로 가면 4시간 안에 들어갈 수 있다.

도로 위에는 주자들이 뿌린 파스 냄새가 가득했다.


35km 돌파.

여기서부터는 가본 적 없는 거리였다.

기다렸다는 듯 후반부 업힐이 시작됐다.

다리가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코스가 오르락내리락, 평탄한 길이 없을 정도였다.


결국, 38km 지점 업힐에서 걷기 시작했다.

시계를 쳐다봤다.

다시 달리면 4시간 안에 들어갈 수 있다.

하지만 다리를 들어 올릴 힘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렇게 남은 4km를 걷다 뛰다를 반복했다.


저 멀리 결승선이 보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함성을 지르면 응원해 줬다.

기록이고 뭐고 이제 끝났다는 생각에 행복했다.

풀코스 완주를 하고 눈물을 흘리는 유튜브 영상과 현실은 달랐다.

지독하게 힘들었다.

물병을 들어 올리는 것도 힘들었다.


완주 메달을 목에 걸었다.

4시간 6분.

나의 첫 마라톤 기록이 되었다.

속으로 중얼거렸다.

다시는 걷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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