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2/07
저녁 밥상을 치우고 뜨개질거리를 꺼내 들었다. 어려운 부분을 끝내고 쭉 겉뜨기만 반복하면 되는 구간이라, 뜨면서 함께 읽을 책도 빌려온 터였다. 한쪽에 실뭉치를 두고, 다른 한쪽에 책을 펼쳐 문진을 올렸다. 아뿔싸, 쪽수가 제법 되어서인지 문진이 영 고정이 되질 않았다. 안 그래도 독서대를 하나 장만할까 했는데 지금이 기회인지도? 인터넷 쇼핑 사이트를 훑어보니 소재나 기능, 가격대가 천차만별이었다. 뜨개질과 독서는 시작도 못했는데 별안간 쇼핑이라니.
이것저것 비교 끝에 괜찮아 보이는 제품을 고르고 보니 이번엔 삼만 원이 넘는 가격이 마음에 걸렸다. 주문을 망설이며 앉아있는데 K가 당근마켓에서 찾아보는 게 어떠냐고 했다. 나쁘지 않은 생각이었다. 필요한 기능만 제대로 갖춘 깨끗한 물건이라면 사용감이 있다 해도 별 문제가 되진 않았으니까. 예상보다 많은 물건들에 놀라며 스크롤을 내리다, 적당한 값의 독서대에서 손가락을 멈췄다.
‘사용하지 않았어요. 보유만 했어요. 34cm x 24cm’.
군더더기 없는 내용에, 딱 내가 찾던 정도의 물건인 듯했다. 판매자와의 거리도 멀지 않았다. 그러나 겁 많은 내가 무턱대고 거래를 진행할 수는 없는 법. 상대가 과연 신뢰할 수 있는 유형인지 먼저 알아보아야 했다. 프로필을 눌러 보니 김치통, 협탁, 장바구니 같은 소소한 물건들이 판매 목록을 차지했고, 받은 거래 후기도 일주일 사이에 집중되어 있었다. 아마 최근에 대대적인 집 정리를 했거나 중고 거래에 재미를 붙인 분이 아닐까.
경계를 누그러뜨리고 구매하고 싶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예‘. 수수한 답변에 귀여운 토끼 이모티콘이 이어졌다. 거래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금방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마침 현금도 있었다. 밤공기가 좋았다. 날이 추워진 뒤로 밤 산책을 나온 지 오래됐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벌써 열 시에 가까운 시각, 거리는 조용했고 들숨으로 찬 공기가 들어올 때마다 머리가 맑아졌다.
판매자는 예상대로 중년의 여성이었다. 뜨개 모자를 쓰고 수줍게 종이봉투를 내민 그녀는 물건 잘 쓰시라고, 조심히 가라고 나를 배웅해주었다. 마스크 안으로 미소가 번졌다. 집에 돌아와 물건을 꺼내 보니 사진처럼 튼튼하고 심플한 독서대였다. 갑작스러운 중고 거래에 정작 책은 읽지도 못하고 잠들 시간이 됐지만, 달밤의 산책 덕에 몸이 노곤했다. 기분이 좋았다.
머리맡에서 진동이 울렸다. 거래 후기가 도착했다는 알림이 와 있었다.
‘감사합니다. 날마다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