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3/10
어린이가 중심인물로 등장하는 영화는 늘 주먹을 꼭 쥐고 보게 된다. 위기 없이는 성장도 없다는 걸 모르지 않지만, 슬프고 시린 일이 저 아이만은 비껴가길 바라며 내내 가슴을 졸인다. 영화의 도입부, 캠코더를 아빠에게 향한 소피가 묻는다.
11살 때 아빠는 지금 뭘 할 거라 생각했어요?
천진한 목소리에 나는 또 한 번 단단히 마음을 먹는다.
그런데 이 영화, 어느 순간부터 다른 주인공에게도 시선이 간다. 서른한 살의 젊은 아빠 캘럼은 딸 소피와 함께 휴가를 보내기 위해 튀르키예에 와 있다. 그는 막 십 대에 접어든 딸에게 눈을 맞추고 선크림을 발라주는 다정한 사람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위태롭다. 태극권 동작을 취하며 호흡을 가다듬는 캘럼의 모습은 그의 내면이 외려 불안으로 일렁이고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어린 딸의 눈에 아빠는 어떻게 보일까. 이혼한 부모 밑에서 소피는 일찍 철이 들어버렸다. 아빠의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다는 것도 알고, 사과하는 그가 민망하지 않도록 의젓한 체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아이는 아이일 수밖에 없다. 소피는 순간순간 달라지는 미묘한 분위기를 감지하면서도 그 이유는 끝내 알지 못한다. 강아지처럼 눈치를 보다가도 이내 주변에 눈을 돌리며 햇빛 아래 휴양지에서의 여름을 만끽하는 열한 살.
31살 생일을 맞은 소피는 조명이 점멸하는 공간에서 위태로이 흔들리는 아빠의 환상을 본다. 그리고 오래된 캠코더를 꺼내며 (아마도 마지막이었을) 아빠와의 여행을 회상한다. 소피의 파편적인 기억과 추측으로 소환된 그 여름. 20년 전 아빠에게 닿고자 꺼낸 기억이지만, 그 시절을 온전히 복원하기란 불가능하다. 몇 주가 지나도 쉬이 가시지 않는 먹먹함은, 이 영화가 영원히 불완전할 수밖에 없는 재구성이라는 데서 비롯된다.
몇 달 뒤 생일이 지나면 나는 영화 속 캘럼과 같은 나이가 된다. 생각하던 서른이 되지 않았고, 마흔은 상상도 안 되는 그 마음을 알 것 같아서, 자꾸 목이 뜨거워졌다. 난간 위에 위태롭게 선 그를 잡아주고 싶었고, 망연히 처진 어깨를 도닥이고도, 한밤의 바다를 함께 달리고도 싶었다. 각각의 카펫에 고유한 사연이 있듯, 우리는 절룩거리며 각자의 이야기를 쓰는 중이니까.
뜨거운 이해와 20년의 간극. 어지러운 섬광 속에서 소피는 비로소 아빠를 붙잡는다. 사랑은 밤의 끝자락에 있는 사람을 어루만지게 하기에, 이 진부한 단어는 다시금 진실로 현현한다. “Sophie, I love you very much, Never forget that.”
And love dares you to care for the people on the edge of the night
그리고 사랑은 네가 밤의 끝자락에 있는 사람들을 어루만질 수 있게 하니까
And love dares you to change our way of caring about ourselves
그리고 사랑은 네게 우리가 우리를 보는 방법을 바꿀 수 있게 하니까
- Queen, <Under press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