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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복숭밤 Jul 17. 2023

장대하고 애잔한 연서 - 영화 <바빌론(Babylon)

23/03/03


<바빌론>은 과잉의 영화다. 뜨거운 사막 한가운데 코끼리의 배설로 시작된 화면은, 저속하고 요란한 밤샘 파티와 모래바람이 이는 촬영 현장으로 달린다.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의 변화기. 영화의 카메라는 장면 하나를 위한 수많은 NG들을 고집스럽게 보여주기도, 끝나지 않는 구토나 기괴한 LA의 클럽 장면을 끼워넣기도 한다. 숨이 가쁘다.


과잉의 미학을 완성시키는 건 음악이다. 특히 초반 파티 시퀀스에서는 재즈와 하우스 비트가 결합된 리듬이 흥분을 고조시킨다. 영화의 밭은 호흡은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를 연상시키는 구석이 있다. 현란하고 어지러운 폭죽의 연발 같다고나 할까. <바빌론>은 올해 오스카에 음악상과 더불어 미술상, 의상상에 후보 지명되었다.


화려함에 화려함이 덧입혀졌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스크린 밖 창작자 데미언 샤젤이 돋보이는 영화이기도 하다. 감독의 전작 <라라랜드>에서도 그랬듯 영화와 할리우드에 대한 사랑이 절절하게 묻어난다. 독특한 점은 사랑하는 대상의 신성하고 아름다운 모습에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눈살이 찌푸려지는 추악하고 지저분한 면면을 거리낌 없이 드러내는 데 있다.



매분 매초 바쁘게 굴러가는 촬영장에서 개인의 고유한 이야기는 지워진다. 박수를 잃은 스타는 너무도 쉬이 교체되고, 구성원의 죽음 역시 촬영 일정에 방해되지 않도록 빨리 수습해야 할 무언가로 인식될 뿐이다. 그러나 감독은 고결하지 않은 요소들이 모여 작품이 되고, 그 영화가 관객들에게 마법 같은 순간을 선사하는 과정 전체에 경의를 표한다. 중년의 매니가 관객석에 앉아 쏟는 눈물은, 영화를 향해 꾹꾹 눌러 쓴 연서로 읽힌다.


영화를 보고 돌아오는 길, 나는 내 글쓰기를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이게 아니면 안 될 것 같다 느끼면서도 까맣게 모르고 싶었던 나날들. 그렇게 오랫동안 글에 몰두하고 멀어지길 반복했다. 처음에 품은 꿈과 달리, 쓰는 일은 오색찬란하지 않았다. 고귀하지 않았고 대단치도 않았으며 밥벌이를 지연시키기만 했다. 그런데도 나는 다시 글을 쓰고 있다.


아바타와 터미네이터까지 등장한 마지막 몽타주가 나에게는 조금도 우습지 않았다. 시간을 뛰어넘어 닿은 고전과 언젠가 클래식이 될 소설에 대한 내 마음과도 같았으니까. 동시에 이 마음은 내가 어떤 위치에 있든 마찬가지일 거라 생각했다. 독자로서, 창작자로서, 나는 스크린을 마주한 매니와 다르지 않았다.


화려한 볼거리와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영화이지만 <바빌론>이 감독의 전작보다 더 나은 작품이라고는 할 수 없겠다. 상영 시간도 길고 전작에 비해 내러티브와 캐릭터의 설득력도 떨어진다. 확실한 메시지가 도리어 교조적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나는 이 영화가 재밌다고 할 수밖에 없다. 무언가를 열렬히 좋아해 본 사람이라면, 미워하고 다시 돌아와 본 사람이라면, 우린 같은 지점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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