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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anke Apr 06. 2024

독에 대해 연구하지 않는 독성학(10)

습관이 남긴 증거

    세숫대야에 담긴 물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투명하고 때로는 아침 햇살에 반짝이며 어떤 형태에도 담기는 물의 신비로움은 시골 소년에게는 좋은 몽상의 주제다. 쭈쭈바에 맺히는 물방울을 보며 구름이 비가 되어 내릴 수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된 터라 물의 신비로움은 더해 갔다. 바닷물을 증발시켜 거대한 구름을 만들고 물을 육지로 끌어올리며 태양 빛으로 데워진 지구를 식히고 거대한 순환을 이어가는 물의 존재는 아직 바다를 보지 못한 시골 소년에게 몽상 주제가 되기엔 충분했다. 자연현상뿐만 아니라 생명 현상에도 물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아가게 되면서 경이롭기까지 했다.

    생명의 유지와 생명체 사이의 순환도 물을 매개로 일어난다. 우주 탐사에서 생명의 존재를 찾을 때, 물을 찾는 것은 인류가 알고 있는 생명은 모두 물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다. 물은 인류가 알고 있는 용매 중 가장 다양한 물질을 녹일 수 있는 물의 특성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의 근간이다. 생명체의 대부분은 70% 가까이 물로 이루어져 있으며, 생체에서 일어나는 생화학적 생리적 반응들은 물속에서 일어난다. 이온성 물질을 녹이고, 세포막의 구조를 유지하는 데 이바지하며(세포의 지질막은 지질 사이의 상호작용이 아니라 지질을 둘러싼 물의 수소 결합에 의해 유지되는 힘이 훨씬 크다), 단백질과 DNA의 적절한 3차원 구조를 유지하게 하는 힘으로도 작용한다. 나트륨, 칼륨 마그네슘, 칼슘, 아연, 철, 구리, 셀레늄, 망간 등 다양한 금속이온을 녹일 수 있는 유일한 용매가 물이다.

     이들 금속이온 중 나트륨과 칼륨은 모든 세포의 기능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삼투압을 유지하고 세포 안팎을 오가며 세포막을 투과하기 어려운 물질이나 농도를 거스르는 이동하게 하는 힘으로 작용한다. 세포 내의 나트륨 이온과 칼륨 이온은 ATP를 소모하며 Na+/K+ ATPase를 통해 세포 밖은 나트륨이온이 높게, 세포 안은 칼륨 이온이 높게 유지된다. 생체가 세포 안의 Na+ 농도를 낮추고 세포 안의 K+ 농도를 높이는 선택은 자연계에 존재하는 두 이온의 비율(바닷물에서 Na+농도가 K+ 보다 약 46배 높다)을 고려할 때 지극히 당연하다. 세포 내에 Na+ 농도를 낮춤으로써 외부의 Na+과 농도 차를 만들어 낼 수 있고, K+의 경우는 이와 반대의 상황을 만들 수 있다. 이온 균형은 세포의 생명 유지에 중요한 요소이다. 혈액 중에 Na+이 과도하게 낮아져 세포가 삼투압을 이용할 수 없거나, 혈액 중 K+이 과도하게 높아지거나 세포 내 K+ 줄게 되면 세포의 정상적인 기능에 영향을 준다. K+이 주요 영양소인 이유는 동물세포는 기본적으로 K+이 부족하기 쉽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식물에는 K+ 농도가 높으므로 채소 섭취를 통해 K+를 섭취하여야 한다. 생체의 이온 균형 특히, Na+과 K+의 이온 균형은 생명 활동에 중요한 요소로 이 균형이 훼손되면, 여러 질환이나 때로 직접적인 사망의 원인이 될 수 있다.

    Na+과 K+은 세포의 기본적인 생명 활동뿐만 아니라, 신경 세포에서는 신경 전도에 이상을 일으키게 된다. 일반적인 세포에서는 이 농도 차이에서 발생하는 에너지를 이용해 세포에 필요한 물질을 세포 안으로 이동시키거나, 세포 안의 물질을 세포 밖으로 이동시키는 능동 수송에 사용하지만, 신경세포는 이러한 농도 차이를 이용해 신호를 전달한다. 신경은 전기적 신호와 화학적 신호로 이루어지는데, 전기적 신호는 이들 이온의 농도차에 의해 이루어진다. 감각세포나 신경자극으로 나트륨이온 통로가 개방되면, 이후 발생하는 이온의 흐름에 의해 발생한 전위차가 전압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나트륨 이온의 이동통로(VGSC, Voltage Gated Sodium Channel)와 칼륨 이온 통로를 정교하게 조정함으로써 멀리 떨어진 신경 말단까지 신경이 전달된다. 신경은 한 번 전달하고 나면 다시 세포 안으로 들어온 나트륨 이온을 퍼내고 칼륨 이온을 다시 세포 안으로 끌어들여 재분극 상태를 만든다. 신경 세포가 적절하게 세포 내 나트륨 이온 농도를 낮추고 칼륨 이온농도를 높인 상태의 전위차를 휴지막전위라 하며 휴지막 전위에 이르면 다시 신경 전도를 일으킬 준비가 된 것이다. 이 전위차는 각 신경의 특성에 따라 다른데 근육 신경세포는 -70 mV로 알려져 있다. 

    한 자세로 오래 있어 혈액 순환이 일정 시간 이상 저해되면 찌릿찌릿한 느낌과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된다. 혈액 공급이 되지 않으면 에너지 부족으로 신경세포가 다음 신호를 전달할 준비상태를 만들지 못하게 되어 일어나는 현상이다. 신경 세포가 신경전도를 하고 나면 효소(Na+/K+ ATPase)가 ATP를 사용해 세포 안의 Na+을 세포밖으로 K+을 세포 안으로 이동시켜 휴지막 전위를 만들어야 하는데 ATP 부족으로 휴지막 전위로 돌아가지 못한다. 혈액이 공급되더라도 곧바로 움직일 수 없거나, 전기 오는 듯한 찌릿찌릿함을 느끼는데, 신경세포가 신경전달을 할 수 있는 휴지막 전위 상태로 돌아오는 과정이다. 감전에서도 이와 유사한 현상이 나타난다. 감전된다는 것 또한 전압 차에 의해 막전위가 파괴되어 나타나는 현상으로 움직일 수 없게 된다. 전류가 심장을 관통하게 되면 심장의 신경세포들이 막전위가 파괴되어 신경 전도가 일어나지 않게 되어 심정지의 원인이 된다. 이처럼 Na+과 K+은 세포의 기능유지뿐만 아니라 신경전도에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


    상기된 얼굴로 법의관이 급하게 사무실로 찾아왔다. 보험사기로 의심되는 사건으로, 사용한 약물은 염화칼륨(KCl)으로 추정되는데, 입증이 가능한지를 물었다. 장비가 없어 의뢰해 분석할 수는 있지만, 투약 여부를 입증할 수 있지는 않다고 했다. 사망하게 되면 세포에 용혈이 일어나 세포 안에 있던 칼륨 이온이 혈액으로 흘러나와 혈액 중 칼륨 농도가 높아져 칼륨 농도가 정상이었는지 아닌지 파악할 수 없다. 투약 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는 뜻이다. 결국, 이레적으로 수사 관계자와 회의가 열렸다. 사건에 대한 수사는 보험 수령자인 용의자의 수상한 행적과 행동들을 의심한 보험회사 직원의 신고로 이루어졌다. 내사 결과, 용의자는 억대의 채무를 가지고 있었으며, 사망하기 수개월 전 아내의 사망보험을 여러 개 가입해, 수령액이 수십억에 이르며, 사망자가 교통사고가 난 곳은 왕복 2차선의 이면도로로 과속방지턱이 많아, 사망에 이를 만한 충격이 일어나기 어렵고 진료기록에서 골절이나 심한 외상이 발견되지 않은 점 등이 밝혀졌다. 또한 진료기록에서 사망에 이를 만큼 단정적이지는 않지만, 혈중 칼륨 농도가 부정맥을 일으키기에는 충분할 만큼 높아져 있었다. 직접 입증은 어렵지만, 염화칼륨 주사제는 병원에서 금고에 보관되고 혈관 주사 시에 독성이 나타나기 때문에 병원관계자이고 혈관 주사가 가능한 사람이 범인이거나 공법이어야 가능하다는 의견을 냈다. 여러 정황을 고려 파묘를 위한 영장을 청구하기로 결정되었다. 영장 청구는 받아들여져 파묘가 이루어졌다. 수사 중에 용의자는 한 간호사와 내연의 관계가 있음이 확인되었다. 이는 염화칼륨이 사용되기 위한 두 가지 제약의 해소-병원에서도 잠금장치로 엄격하게 관리하며, 혈관 주사를 해야 한다는-를 뜻했다. 매장한 지 4개월여 지났으며, 겨울을 지난 탓인지 사체는 외형상 부패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로 몇 곳의 주사 자국이 선명하게 식별되었다. 사망자는 교통사고로 병원에 이송되어 치료를 받았으니 주사 흔은 염화칼륨 투약의 근거가 되지 못한다. 부검에서는 특이 소견이 발견되지 않았으나, 혈액에서 치료농도의 졸피뎀과 소주 반 병 정도로도 이를 수 있는 혈중 알코올이 검출되었다. 이제 혈관 주사를 위해서는 당사자가 움직이지 않거나 움직일 수 없는 상태여야 한다는 마지막 조건이 더 갖추어졌다. 졸피뎀과 알코올의 병용은 중추신경 억제에 상승 작용을 나타낸다. 망자는 깊은 수면을 넘어, 가벼운 의식 저하에까지 이를 수 있는 상태다. 모든 정황은 완벽하다. 수사는 급물살을 탔지만, 아직 결정적 증거는 없다. 용의자 소유의 차량이 의뢰되고 승용차 안에서 염화칼륨의 흔적을 찾겠노라며 교통 담당 선생님이 어떻게 생겼냐고 묻는다. 같이 찾아보자는 제안을 완곡하게 거절하는 그에게 염화칼륨 결정을 보여주며 입자도는 다르겠지만, 소금 결정처럼 광택이 있는 결정형 분말 형태로, 흩뿌려진 흔적을 찾아야 한다고 일러두었다. 30여 분 지났을까, 흰색의 그러나 광택은 없는 알갱이 몇 개를 들고 온다. 일감에 백설기 종류의 떡 부스러기다. 분석해 봐야 칼륨이 나트륨만큼은 아니지만 흔한 금속이니 검출은 되겠지만, 의미는 없다. 전분 확인시험은 간단하니 보여주며 돌려보냈다. 30분이 지났을까 담요 하나를 들고 들어온다. 잘 흩뿌려진 광택의 입자들이 흩뿌려 있다. 칼륨 이온과 염소이온이 확인된다. 수고하셨다고 말하고 돌아서는 뒤통수에 말에 교통 담당 선생님의 짤막한 물음이 달린다. 왜 흩뿌린 흔적인가요? 사람은 쉽게 습관을 버리지 못해요. 주사약을 채우고 공기를 빼는 건 모든 간호사가 학습받은 그래서 습관이 된 행동입니다. 아무리 누군가를 죽이려는 의도가 있었더라도 말이에요.     

    과도한 소금의 섭취는 체액의 나트륨 농도를 높여 삼투압에 의해 세포액이 세포 밖으로 유출되며 세포가 탈수에 이른다. 세포의 탈수는 세포막이 일그러져 세포막에 있는 기능성 단백질들이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됨으로써 세포 기능이상과 손상을 발생시킬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이 뇌신경 세포에 일어나면, 환각, 발작, 혼수에 이를 수 있다. 만약, 세포 밖의 칼륨 이온농도가 상승하게 되면, 일반 세포에서는 칼륨을 이용한 세포 내외의 물질 이동 기능이 원활하게 작동하지 않게 된다. 신경 세포는 VGSC에 의해 유입된 나트륨 이온을 상쇄하기 위해 세포 외로 빠져나가야 하는 칼륨 이온이 밖으로 나가지 못해 세포 내 칼륨 저류가 일어나고, 신경 전도에 이상이 발생한다. 이러한 현상이 심장에서 나타나면 부정맥이 발생하고, 심한 경우 심정지에 이른다. 염화칼륨은 특히, 수액에 염화칼륨과 근이완제를 섞어 점적하는 방식은 19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의료계 종사 전문직들의 자살 방법으로 유행했었고 수년에 한 두건씩 발생하지만, 타살에 사용하기는 상대적으로 어렵다. 혈관 주사를 해야 하므로 혈관 주사를 할 줄 알아야 하고, 주사하기 위해서는 환자가 동의하거나 저항할 수 없는 상태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용의자가 망자를 화장했더라면, 차량의 담요를 버렸더라면, 많은 증거가 사라져 아마도 이 사건은 완전범죄에 좀 더 근접했을 수 있다.


     범죄자의 특별한 행동이 증거를 남기기도 하지만, 때로는 사소한 습관이 증거를 남기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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