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을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의 구별
엉금엉금 기기 시작하는 아이는 부쩍 잡히는 것마다 입에 넣는다. ‘지지, 지지’하며 아이를 안아 올리는 장모를 바라본다. 아이가 입에 잡히는 대로 물건을 가져가는 것은 이가 나면서 간지러움 때문일 수 있지만, 먹을 것을 찾는 본능의 표현이기도 하다. 이런 생각할 때가 아니다. 이유식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가 입에 이런저런 물건을 넣는 행동은 사라졌다.
어미 소가 송아지와 풀 뜯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가끔 어미 소는 송아지를 머리로 밀었다. 송아지를 괴롭히는 어미 소가 야속하여 고삐를 끌어당겼지만, 어미 소의 행동은 때때로 계속되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송아지가 독초를 먹으면 먹지 못 하게 하는 것이다. 사람만 지식을 후대에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소도 생존에 관한 기본 지식을 전달한다. 먹을 수 있는 풀과 먹지 못하는 풀을 알고 기억해야 동물도 생존할 수 있다. 초식 동물들도 중독 위험이 있는 풀이 있고 동물마다 그 종류도 다르다.
중독관리 정보수집을 위해 방문하며, 미국의 여러 PCC(Poison Control Center)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방문한 곳 대부분은 사람을 대상으로 전화로 정보를 제공하는 곳이었지만, 동행하신 수의사이자 독성학자이신 선생님 덕분에 코넬 대학 수의과대학을 방문해 동물 중독에 관련된 현황을 볼 수 있었다. 제법 넓은 곳에 다양한 독초를 키우고 있었다. 소는 독초를 먹지 않는데 이런 것이 필요한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동물이 독초에 중독되는 일은 미국에서는 흔한 일이라 했으며 곧 그 이유를 가늠해 볼 수 있었다. 어렸을 때 소는 어미에게서 먹을 수 있는 풀과 독초를 구별하는 법을 배우지만, 빠른 증식을 위해 일정 시기가 되면 어미 소로부터 격리해 생활하게 하고, 비슷한 시기의 소를 몰아 키우는 방식으로 몇 세대를 지나온 소는 독초 구별하는 법을 배우지 못해 그 집단에서 독초를 구별하는 법이 잊혔을 것이다. 목초지에서 독초가 포함되어 중독되기도 하고 목초지에 자라고 있는 독초를 섭취해 중독될 수 있다고 했다. 소나 사람이나 독초를 구별하는 법을 잊어가기는 마찬가지였다. 사람은 다른 안전하게 재배한 식품이 풍족하니 안 먹으면 그만이지만, 소는 주식이 풀이니 조금 더 위험할 수 있으리라. 사람도 기근이 닥치면 독초에 노출될 가능성이 있으며, 인류 역사 전반에서도 먹지 않던 것에 도전은 먹거리 부족할 때 활발하게 시도되었을 것이다. 열대 지방보다 먹거리가 부족했던 우리나라에 각종 나물 섭취는 잦은 기근을 겪은 역사의 산물일 수 있다.
2007년 방글라데시 지역에 몬슨 홍수로 인해 기근이 발생했다. 이로 인해 도꼬마리(Xanthium strumarium)의 어린 풀을 먹고 19명이 사망하고 76명이 중독되는 일이 있었다. 식물독 대부분은 성장하면서 독성분이 증가한다. 도꼬마리의 성장하면서 독성분이 증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어린 식물을 먹었음에도 많은 희생이 있었던 것은 당시 기근이 얼마나 심했는지 짐작하게 한다. 도꼬마리는 국화과의 단년생 초본으로 우리나라에서는 도꼬마리 열매를 창이자(蒼耳子)라 하여 한약재로 사용한다. 독성이 있어 한약재로 사용할 때는 볶거나 술에 담갔다가 사용하거나, 싹을 틔워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도꼬마리의 대표적인 독성 물질은 Carboxyatractyloside와 atractyloside라는 물질로 미토콘드리아의 ADP/ATP translocase와 산화적 인산화를 억제하는데 Carboxyatractyloside는 ADP/ATP transplocase를, atractyloside는 산화적 인산화를 더 강력하게 억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독성은 어렸을 때보다 성숙할수록 강력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방글라데시에서 기근이 발생하며 어린싹이지만 많은 양을 먹어 중독사고가 일어난 것으로 생각된다. 산화적 인산화 억제는 저혈당증, 호흡억제, 젖산 산증, 저산소혈증과 전신 저산소증을 일으킨다. 주요 임상 증상으로 복통, 메스꺼움, 구토, 졸림, 심계 항진, 불안정한 호흡 등을 보이며, 심각한 경우, 발작, 간 부전, 의식소실을 보이며 죽음에 이를 수 있다.
도꼬마리 중독은 사람 외에 소와 말 등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 폐사한 소에 대한 간 조직의 병리학적 소견에서 간 괴사가 관찰되고, 소의 건초에서 도꼬마리 열매가 보여 확인이 필요하다 했다. 며칠 더 바삐 움직이고 퇴근 시간이 늦어지겠지만, 염소 그리아노톡신 중독을 해결하기 위해 수소문했던 수의 병리학자 선생님의 열정을 알기에 부탁을 쉽사리 거절하기 쉽지 않다. 갑작스러운 폐사로 인해 혈액을 채취할 수 없었고, 부검하고 시간이 지난 탓에 위내용물과 간 조직과 위내용물에서라도 확인하고 싶다고 했다. 간 조직은 포르말린으로 고정된 상태여서 확인이 불가능하고(포르말린으로 조직을 고정하는 과정에서 약물이 제거된다) 위내용물과 폐사한 소가 먹었던 건초가 있으면 보내달라고 했다. 이틀 후쯤 사료와 소의 위 내용물을 보낸다 했으니, 그 사이 분석법을 만들 수 있으리라. 함량까지 하려면 상용화된 표준품이 필요하지만, 확인은 대조 시료가 있으니, 고해상도 질량분석기를 활용해야 해 볼 수 있으리라. 독성이 큰 식물임에도 인터넷에 판매 광고가 올라오기는 하지만, 마음이 급하다. 회사가 도시에 위치에 있다고는 하지만, 외곽이어서 주변에 수풀이 있으니, 어릴 적 기억을 더듬어 자랄 만한 곳을 탐색하면 비교적 흔한 식물이니 운이 따라준다면, 채집이 가능하리라. 물을 좋아하는 식물이니 평소 산책을 다니던 곳이 아닌 아래쪽 개울가로 향했다. 저만치 이미 말라버린 열매가 제법 달린 도꼬마리 몇 개체가 눈에 띈다. 일찍 발견한 탓에 점심시간이 아직 많이 남았지만 기쁜 마음에 발걸음을 재촉한다. 매일 같이 들어오는 감정물이 있기에 일을 미루면 쌓여만 가니 일을 서둘러 해결해야 한다. 채집해 온 창이자로 추출법과 분석조건을 확립하고, 문헌에 보고된 유사한 물질이 있는지 검토하였다. 많지는 않지만 지표 물질을 확인한 논문이 몇 개 있었고, 분석법 검토에 활용하였다. 사료에서 창이자로 보이는 것을 모아 확인하였고, 소 위내용물에서 Carboxyatractyloside와 황산기 하나가가 떨어져 나간 Mono-desulfated Carboxyatractyloside를 검출해 결과를 알려주었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없는 것을 구별하는 것은 본능과 경험을 통한 학습에 의존한다. 먹을 수 있는 종류와 양이 종마다 다르고 위험도에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전반적으로 초식 동물조차도 먹을 수 있는 것보다 먹을 수 없는 식물들이 더 많다. 엄밀히 말하면 먹을 수 있으나, 먹어서 얻는 이익보다 그 독성이 큰 경우의 식물들이 훨씬 많다. 사람은 볶거나, 데쳐서 짜거나, 우려내는 방법으로 독을 제거하여 먹음으로써 그 위험을 피해 더 많은 것을 먹을 수 있기는 하지만, 먹을 수 있는 시기, 양, 방법, 독성 등을 정확히 알고 적정량 먹어야 한다. 자연에도 먹고 죽을 만한 물질을 포함한 식물은 널렸다. 물질이 독성을 나타내는 방식에 따라, 먹은 후 즉각적으로 반응을 나타내지 않고, 지연되어 독성이 나타날 수 있어 원인이 되는 식물을 빨리 알아채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도꼬마리도 그중 하나다. 미토콘드리아의 기능억제는 세포 자살 신호를 유도하게 되어 노출 후 수일~수십 일 후 증상을 나타내는 경우가 많은데, 도꼬마리의 독도 그런 물질 중 하나이다. 급성독성이 나타나지 않을 정도의 상대적으로 적은 양의 노출이라도 산화적 인산화 억제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지속되면 미토콘드리아는 자살 신호가 활성화되어 세포가 죽게 되고, 죽은 세포의 처리와 생성 속도보다 많은 세포의 죽음은 조직학적 병변을 남기며, 장기 기능 저하를 가져온다.
인터넷에 창이자 판매 광고를 보며, 볶거나 싹을 틔우는 과정에서 독성 물질이 감소할 수 있으나, 함유량 볶는 정도, 섭취량에 따라 알지 못하는 사이에 누군가는 급성은 아니더라도 중독되고도 모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나, 창이자 열매즙부터 차로 마시는 것 같은 장기간의 노출은 그런 우려를 증가시킨다. 건강에 관한 관심으로 건강식품에 대한 소비가 늘고, 자연산이 좋다는 인식은 그런 위험을 증가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창이자는 적절한 처치를 통해 약으로 사용할 수는 있겠지만, 식품으로 사용하기에는 부적절한 식물이다.
먹을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의 구별은 맛과 냄새로 오랜 역사 속에서 얻어진 경험을 바탕으로 유전되고 살면서 학습되지만 몹시 불완전하다. 더욱이 산업화로 인간이 만들어 낸 무수한 물질들 중 보존제, 색소, 감미제 등으로 우리의 식탁에 오르며 불안을 가중시키기도 한다. 여러 과학적인 실험을 통해 어느 정도의 안전성을 확인하고 사용된다 하더라도 과도한 사용과 노출은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이들의 위험은 때로 과장되기도 하고 과소 평가되기도 한다. 인류가 먹을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별하는 과정 중에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듯 과학이 발전한 현대에도 그 과정을 완전히 피할 수는 없지만, 물질에 대한 더 많은 이해와 위험에 대한 평가를 통해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없는 것을 구별하고 건강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노출량을 산정하고 규제하는 것은 이제 오감이 아닌 과학의 영역이 되었다. 그 과학의 영역이 독성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