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은 근절된 적이 없다(2)
우리나라에 양귀비 유입은 신라말 고려 초 중국에서 유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 세조 때 꽃과 나무의 재배와 이용에 관하여 서술한 원예서인 ‘양화소록’에는 ‘앵속각’이라는 이름으로 양귀비에 대한 최초의 기록이 있다. 광해군 3년(1611년)에는 아편의 효능 및 제조법이 소개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양귀비의 본격적 재배는 구한말 중국인 ‘양대인’에 의해 양귀비를 국내에 들여오면서부터다. 이때부터 아편 중독자가 급속히 증가했으며, 선교사들에 의해 모르핀이나 헤로인이 유입되기도 하였다. 그 후 치료목적으로만 사용하도록 양귀비 재배지를 한정했는데 강원도와 함경도 일대에 양귀비 재배 단지가 조성됐다. 이 일대에서 생산하는 수출용 아편의 유실을 막기 위해 1919년 아편 단속령을 내렸다. 1925년부터는 아편을 수출하기 위해 재배지를 전국적으로 확대했으며 1929년 아편의 불법유통을 막기 위해 제조 및 판매를 모두 관영화했다.
1945년부터 해방 직후, 마약 중독자 증가는 중요한 사회문제로 급부상했다. 1949년 2월경 정부에 등록된 마약 중독자 수는 6,000명 수준이었으나 실제로는 10만 명 이상일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일본 철수 시 국내에 남은 마약이 불법 유통되었고, 해방 후 아편 중독자들이 국내로 유입되었기 때문이다. 한국전쟁 중에 부상자 치료용으로 사용한 마약이 마약 중독자를 양산하기도 했다. 1960년대 월남전쟁 파병으로, 베트남 아편이 대량 유입됐다. 전남 섬 지역과 강원도 광산촌과 같은 도서 지역에서 마약 중독자가 급증했다. 1965년 ‘메타돈 파동’도 있었다. 제약회사들이 메타돈이 함유된 진통제를 당국의 허가를 받아 제조, 판매해 마약 중독자를 양산한 사건이었다. 메타돈은 2차 세계대전 중에 독일에서 모르핀 대신 진통제로 사용됐다. 고기잡이를 나갔던 어부가 돌아와서는 막걸리나 밥을 찾는 것이 아니라 이 주사약을 우선 한 번 맞아야 하고 밭에 나가서 일하는 농민들도 아낙네가 광주리에 숨겨 가지고 온 이 주사약을 맞아야 다시 일하게 된다는 내용이 언론에 다수 보도되기도 했다. 당시 유통되는 진통제에 메타돈이 함유됐다는 사실을 밝혀낸 사람은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약무사 이창기였다. 정부는 메타돈 파동을 계기로 정부가 서울지검 등에 마약전담반을 최초로 설치, 운영한 계기가 됐다.
1970년대 주한미군 기지촌을 중심으로 젊은이들 사이에서 대마초 남용이 급증했다. 1975년 12월에는 당대 가요계 스타들이 가요계 활동을 중단한 계기가 된 일명 ‘대마초 파동’도 있었다. 정부는 대마 확산의 심각성을 인식해 1976년에 습관성의약품관리법에서 대마만을 분리하여 대마관리법을 제정하여 단속을 강화했다. 이러한 노력으로 1980년부터는 대마 남용자가 감소했나 메트암페타민 밀제조량이 급증했다. 한국 경제성장과 마약 밀수에 대한 단속강화로 일본에 밀수출이 어려워지자 밀제조된 메트암페타민이 국내에 유통되면서 메트암페타민 중독자가 큰 폭으로 증가하였다. 이에 정부는 1989년 대검찰청에 마약과를 신설하여 메트암페타민 제조조직을 집중적으로 단속해 메트암페타민 사용이 줄어들었지만, 대마와 아편 사용이 증가했다. 청소년들이 톨루엔 성분의 본드·시너와 부탄가스를 환각을 위해 남용하기 시작했다. 상용을 지키면 마약성 작용이 나타나지 않아 일반 의약품으로 분류되어 있던 지페프롤(기침억제제), 덱스트로메토르판(기침약), 카리소프로돌(근이완제) 과량복용에 의한 남용이 증가하여, 많은 중독자와 중독 사망자가 발생했다. 이 당시 소년들은 본드, 부탄가스, 약물 오남용으로 한해 수십명씩 사망했다.
1990년 청소년층의 본드, 부탄가스 등의 오남용을 막기 위해 유해화학물질 관리법이 제정되고, 1995년 지페프롤을 향정신성의약품으로 규제하며 이들의 남용은 90년대 후반에 들어서며 큰 폭으로 감소하였다. 메트암페타민은 1990년대 초반에는 정부가 메트암페타민 제조조직을 단속하며 중국, 동남아시아 등으로부터의 밀수입이 증가하였다. 국내 단속이 심해지며 가격이 급등하자, 1990년대 중반에는 메트암페타민 제조조직이 중국으로 건너가 국내, 일본으로 메트암페타민을 밀수출하기도 했다.
2003년 일반 의약품으로 팔리던 덱스트로메토르판 및 카리소프로돌을 향정신성의약품으로 규제하며 이들의 오남용은 많이 감소했다. 집중적인 단속과 규제는 표면적으로 마약 문제가 잘 통제되고 있어 대내외적으로 마약 청정국으로 불렸다. 이 와중에도 해외 유학생이나 외국인을 중심으로 엠디엠에이(엑스터시), 야바와 같은 신종마약 사용이 급속히 확산하였다. 경제성장에 따른 유학, 여행, 활발한 인적교류 등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클럽을 중심으로 엑스터시 유행이 시작됐으며, 국제 마약 조직이 마약 청정국으로 분류돼 적발 가능성이 적은 한국을 마약 유통 경유지로 이용하는 현상도 나타났다.
2000년대 후반부터는 새로운 마약 구조체 또는 기존 구조에 변형을 가해 만든 신종마약이 세계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했으며, 국내에도 빠르게 유입되기 시작했다. 마약사범들 사이서 ‘해도 안 걸리는 마약’이라는 홍보 문구가 유행하기도 했다. 현행법상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등록된 구조의 물질을 사용한 것이 아니라면 마약사범으로 처벌할 수 없다는 허점을 노린 것이다.
2010년대 들면서, 전통적인 남용마약류인 메트암페타민, 대마 남용자가 지속해서 증가하는 가운데 LSD, 코카인, 케타민, 합성 대마류에 대한 남용이 전 연령대에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특히 10대와 20대 남용자 증가세가 두드러진다. 펜타닐과 같은 합성 아편류 등 강력한 마약 남용이 증가하고 있고, 이에 따른 급성 중독사가 증가하는 등 과거와는 다른 차원의 사회문제가 될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마약 과잉생산, 가격 하락, 유통망 다변화, 유통 속도 증가, 마약에 대한 관용성 증가 등 이제까지 인류가 겪어 보지 못했던 마약의 위협이 우리나라에도 계속해서 영향을 주고 있다.
국내 마약 남용 증가의 국내 요인으로는 MZ세대를 중심으로 한 마약에 대한 관용성 증가와 다크웹, 가상화폐, 국제택배를 활용한 유통망 다변화로 인한 마약에 대한 접근성 증가는 특히, 젊은 층의 마약 남용 증가의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국제적인 요인으로는 합성 마약 증가에 따른 전 세계적인 마약 생산량 증가와 가격 하락이 주요 원인이다. 인터넷을 통한 빠른 유통은 과거에는 해외에서 최초 출현한 마약이 시차를 두고 한국에서 발견되던 것이, 최근에는 국내에서 세계 최초로 구조가 규명된 신종마약이 확인되기에 이르렀다. 신종마약은 해도 걸리지 않는 마약으로 홍보되며 유통되었다. 국내에서도 2011년 이후 임시마약류 지정제도, 유사체 지정제도를 도입하며 법적 체계를 갖추었지만, 늘어나는 신종마약 종류를 찾아내는 인력 증원과 인프라 확보는 제때 이루어지지 못했다. 국내에 다양한 신종마약류가 6개월~1년 주기로 유행하다 사라졌고 일부는 계속해서 남용되고 남용자가 증가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해도 걸리지 않는 마약으로 홍보되며 마약 남용을 부추겼다. 쏟아지는 신종마약으로 지난 10여 년은 마약 감정인들에게는 고난의 행군이었다. 감정 기법을 만들면 곧 시장에서 사라지곤 했다. 이 기간에 감정량이 두 배 늘어나는데 채 3년이 걸리지 않았다.
우리나라가 마약청정국임을 홍보하고 자랑스럽게 여긴 것은 아마도 본드, 부탄가스 등의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2,000년대 초반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런 안일함 속에서 신종마약이 등장하고 있었고, 우리나라에서 남용하는 마약의 종류가 늘어가고 있었으며, 전 세계적으로 마약은 생산량 증가, 가격 하락, 새로운 마약의 등장이라는 과거에 없던 변화로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 역사에서 보듯 우리나라도 마약이 한 번도 근절되거나 문제가 되지 않은 적이 없으며,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수준의 위협을 받고 있다.
마약 사범에게 사형까지 하는 국가에도, 대마를 합법화하는 국가에서도 마약은 근절되지 않고 있다. 이제 마약청정국 지위를 되찾자거나, ‘마약과의 전쟁’, ‘마약 근절’ 같은 과격한 구호 말고, 마약의 본질을 이해하고, 대외 환경변화를 잘 파악해 차분하게 대응책을 마련해 나가야 한다. 전 세계적으로 마약의 위협이 커져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