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이, 암 그리고 진화

— 불완전함이 빚어낸 완전함

by Ananke


불완전함이 빚어낸 완전함 — 변이, 암 그리고 진화

“요즘 주변에 아픈 사람이 너무 많아요. 환경이 예전 같지 않아서 그런 걸까요?”

지인의 걱정에 환경을 탓하기에는 근거가 부족하다는 말을 이 목지 차올랐지만 하지 않았다. 걱정에는 논리보다 위로가 필요하다는 걸, 이제는 안다. 다행히 모두 초기암이거나 양성이었지만, 그 사실만으로 불안이 가라앉지는 않아 보였다.


문득 어린 시절 민방위 훈련이 있던 날이 떠올랐다. 운동장에 나와 담장 밑에 쪼그리고 앉던 그 형식적인 훈련 속에서, 선생님들은 담배를 문 채 이런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핵폭탄은 암을 일으킨대.”

“요즘 애들은 라면 스프를 너무 먹어서 그렇지.”

“동물은 암에 잘 안 걸린다잖아.”

그때는 믿을 것도, 의심할 것도 없었다. 어른들의 말은 언제나 과학처럼 들렸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 알게 되었다. 그 말들 대부분은 두려움이 만든 오해였다. 인스턴트식품, 조미료, 방부제, 사카린… 산업화가 몰고 온 새로운 물질들은 ‘화학은 해롭고, 천연은 안전하다’는 단순한 인식을 퍼뜨렸다.

사실 우리가 ‘화학조미료’라 부르는 대부분의 물질은 미생물 발효 과정을 통해 얻는다. 자연의 일부다. 그럼에도 ‘화학’이라는 단어가 붙는 순간,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불안을 느낀다. 공포는 종종 무지보다 훨씬 강력하다.


암은 분명 두려운 질병이지만, 그 근원을 들여다보면 아이러니하게도 생명의 본질 그 자체에서 비롯된다.

DNA는 완벽하지 않다. 복제 과정에서 드물게 잘못된 염기쌍이 생기는데, 이는 ‘호변이성(tautomerism)’이라는 분자적 현상 때문이다. 아데닌(A)과 티민(T), 구아닌(G)과 사이토신(C)은 늘 정확히 짝을 이루지만, 아주 짧은 순간 구조가 뒤틀리며 엉뚱한 짝을 만들기도 한다. 그 미세한 오류가 바로 돌연변이의 씨앗이다.

생명은 이 불안정함을 극복하기 위해 스스로를 고치는 능력을 발전시켰다. 인간의 DNA 중합효소와 복구 시스템 덕분에 실제 오류율은 10억 분의 1 수준으로 낮아졌다. 하지만 완벽은 존재하지 않는다. 세포가 분열할 때마다 3~30개의 변이가 생긴다. 대부분은 무해하지만, 그중 일부는 암의 발화점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만약 이런 불완전성이 없었다면 생명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모든 복제가 완벽했다면, 생명은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지 못했을 것이다. 돌연변이는 진화의 재료이자, 생명의 유연성을 가능하게 한 근원이다. 생명은 안정과 변화의 경계 위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며 앞으로 나아왔다.


염색체의 전좌, 즉 한 염색체의 조각이 다른 염색체로 옮겨 붙는 현상은 암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종의 분화를 이끌기도 한다. 유전자의 변화는 파괴이자 창조의 힘이다.

환경이 불안정할 때는 변화가 생존의 열쇠가 되고, 환경이 안정적일 때는 보존이 유리하다. 생명은 그 미묘한 균형을 유지하며, 불안정한 세계를 견뎌왔다.


1986년 체르노빌 원전 사고는 인류에게 끔찍한 재앙이었다.

하지만 수십 년이 지난 지금, 그 땅은 예상과 달리 놀라운 생명력으로 가득하다. 방사능에 노출된 생물들이 모두 사라진 것이 아니라, 일부는 유전적 변이를 통해 환경에 적응했다. 심지어 방사능을 에너지원으로 이용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미생물도 발견되었다.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는 사이, 그곳은 오히려 새로운 생태계를 품었다.

참혹한 비극 속에서도 생명은 길을 잃지 않았다. 이것이 유전자의 힘이다. 파괴 속에서도 생명은 끝내 ‘변화’를 통해 생존의 길을 찾아왔다.


암은 개인에게 불행이지만, 생명의 역사 속에서는 환경변화에 적응하는 강력한 도구인 유전자 변화의 산물이다.

평균수명이 길어지고 진단 기술이 정교해진 만큼, 암은 더 자주 발견될 수밖에 없다. 피할 수는 없지만, 그 확률을 낮추는 선택은 가능하다.

육류를 구울 때는 너무 태우지 말고, 채소를 곁들이는 것이 좋다. 단백질이 고온에서 탄화될 때 생성되는 벤조피렌은 대표적인 발암물질이다. 채소의 항산화 성분 등 다양한 물질은 이런 영향을 완화한다.

제철 음식이 좋은 이유도 단순한 신선함 때문만은 아니다. 장기 보관된 식품에는 곰팡이 독소인 아플라톡신 같은 유전변형 유발 물질이 생기기 쉽기 때문이다. 곡류나 견과류는 신선하게 보관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스트레스다. 스트레스는 면역체계를 무너뜨리고, 면역은 암세포를 감시하고 억제하는 마지막 방어선이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 이 오래된 격언은 단순한 도덕적 구호가 아니라, 생물학적 사실에 가깝다. 몸과 마음은 분리된 존재가 아니라, 하나의 생명 시스템 속에서 서로를 지탱하는 두 축이기 때문이다.


유전자는 태생적으로 불완전하다. 그러나 바로 그 불완전함 덕분에 생명은 변하고 진화한다. 돌연변이는 질병의 씨앗이자, 동시에 생명의 발명가다. 개체는 사라지지만, 종은 변이를 통해 이어지고, 파괴 속에서도 생명은 스스로의 길을 다시 그린다.

암은 그 불완전성의 그림자이자, 생명이 환경 변화에 적응하게 하는 원동력이다. 완벽하지 않기에 개체는 불형을 겪지만, 생명은 살아남아, 여전히 살아 움직인다. 인류 또한 그 불완전함의 산물이며, 그 덕분에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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