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급체로 깨달은 사랑-
"엄마, 엄마!"
나를 흔들어 깨우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린다.
"엄마, 배가 너무 아파요."
깜짝 놀라 눈을 떠보니 큰 아이가 배를 움켜쥐고는 나를 부른 것이다.
시계를 보니 새벽 2시36분.
잠결이었지만 먼저 열이 나는지 이마에 손을 갖다대었는데 열은 없다.
문득 어제 저녁에 해준 짜장떡볶이가 생각났다.
맛있다며 보통때보다 더 많은 양을 먹는 것을 보고 내심 기뻐했는데 소화가 안되어
급체를 한 모양이다.
아이가 급체한 게 너무 오랜만이라 당황스러웠지만 우선 침착하게 아이부터 진정시켜야 했다.
집에 뭐가 있었더라?
약상자부터 들춰보니 몇 종류의 소화제와 까스활명수 한 병이 있었다.
까스활명수와 이름이 익숙한 소화제 한 알을 꺼내 아이에게 건네주고는
내 방에 눕혀 배를 만져주었다.
"엄마 손은 약손"
어렸을 때 아이가 체했을 때나 배가 아플때 종종 해주었던 나만의 흥얼거리듯하는 노래이다.
친정엄마가 내가 어린시절 배 아플때 해주셨던 방법인데(물론 엄마는 노래를 불러주시지는 않았다)
엄마가 내 배를 만져주면 언제그랬냐는듯 씻은 듯이 나아진 경험덕분에 나도 아이들에게 자주 해주곤 했다.
이게 커서도 통할지 알수 없었지만 아이가 너무 고통스러워해서 다 큰 아이를 옆에 두고
배마사지를 해주니 너무 아프지만 고맙다고 말하는 아이.
약을 먹었으니 곧 나아질거라고 했는데 갑자기 구역질이 난다며 화장실로 뛰어들어갔다.
하지만 실패한 모양이다. 잠시 뒤 트림과 방귀가 한 번 나왔을 뿐 나아질 기미가 안보이니
어떡한담?
급히 핸드폰을 열어 우리 동네 응급실을 알아보았다.
다행히 집 근처 병원에서 응급실이 운영중이다!
"너무 아프면 응급실 가자."
"네? 병원갈 정도는 아닌것 같은데...조금만 기다려볼게요."
병원은 아이가 커서도 무서운 모양이다.
무슨 방법을 더 써봐야할지 계속 생각하다가, 맞다! 친정엄마가 해마다 남양당 한약방에서 지어주신
한약이 떠올랐다.
소화가 안될때에도, 가스가 차서 아팠을 때에도 즉방이었던 명약.
왜 이제서야 떠오른 걸까? 그런데 이런. 부랴부랴 찾아보니 없다.
어디갔지? 분명 엄마가 많이 주셨는데. 이렇게 급할때 없으니 아쉬웠지만 어쩌랴.
혹시 다른 통에 옮겨놓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여기저기 뒤지다 보니
있다! 그런데 남은 양이 겨우 15알 정도밖에 안된다. 최소 30알 정도는 먹어야 효과가 있을텐데...
이거라도 있는 게 어디냐며 아이에게는 이거 먹으면 금방 효과가 나타날거라고
안심을 시켜주었다.
마치 처음 겪는 고통을 마주하듯 사색이 되어 눕지 못하고 장농에 기대 앉아 숨을 몰아쉬는 아이.
별일 아니라는 듯 말은 하고 있었지만 머릿속으로는 가족 누구도 깨우지 말고 혼자 아이랑
응급실 다녀올 궁리를 하는 중이었다.
그러면서도 토할 것 같으면 토를 해야 한다고, 그리고 변을 봐야 나아지니 변기에 앉아보는게 어떻겠느냐고
제안하니 아이는 그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바로 실행에 옮겼다.
화장실 앞에서 지켜서서 초조하게 아이의 상태를 살피는 사이 아이가 토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몇 번의 소리가 난 후 드디어 아이가 모습을 드러낸 순간 됐구나! 싶었다.
"엄마, 이제 살 것 같아요. 많이 괜찮아졌어요."
"정말 다행이다. 이제 가서 얼른 자자."
휴~
시간은 어느덧 새벽 4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이제 아이의 고통이 사라졌고 나의 걱정의 시간도 지나갔지만 더러워진 변기를 씻어내야 했다.
오랜만에 맡는 지독한 냄새였다.
그래도 기쁜 마음으로 깨끗하게 오물을 닦아내고 씻어내니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이 어둡고 추운 새벽에 응급실을 가지 않고 해결된 게 어디인가~
아이가 더이상 고통속에서 헤매지 않고 잠들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온 가족을 깨우지 않고 우리 둘이서만 고통을 분담했다는 사실에도 만족감을 느끼다니
미소가 새어나온다.
한 바탕 새벽에 아이와 벌인 소동 덕분에 어린 시절 내가 아팠을 때 친정엄마가 낫게 해주셨던
방법과 그 경험을 바탕으로 내가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었던 것들. 그리고 준비된 상비약 덕분에
위기를 무사히 지나갈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나'라는 환경이 참 좋은 새벽이었다.
오랜만에 위기 상황 속에서 엄마로서만 줄 수 있는 위안을 아이에게 건넸다는 생각에, 내가 엄마라는
사실을 다시금 깊이 느끼게 된 순간이었다. 만감이 교차하며 묘한 뿌듯함이 마음을 채운다.
아이도 언젠가 커서 이번에 겪었던 일들을 떠올릴 날이 있을 것이다.
고통속에 진하게 아팠던 경험이 약으로 쓰일 것이라는 믿음과 함께
나도 이제 좀 쉬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