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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19' [.]목련

결말은 고귀하지 않다

by DHeath

노루 꼬랑지 같던 것이 제법 봉긋해지더니 못 본 며칠 새 활짝 만개했다. 흐린 날 다음 황사가 걷힌 하늘까지 더해지면 제법 감격스럽기까지 하다. 폐가에 남은 한 그루를 보러 매해 이맘때가 되면 부러 빈 집을 찾아가게 되니 목련은 꽃잎만큼 제법 풍부한 힘을 지니고 있는 거겠지. 매화가 피고 향기가 코끝을 스치면 봄이 오나, 싶고 목련이 활짝 피면 봄이다, 한다.

그곳에 도착했을 땐 이미 꽃잎이 제법 떨어져 있었다. 피는 동시에 지는 걸 약속한 것처럼. 목련은 올해도 어김없이 아무도 모르게 핀 것처럼, 아무도 모르게 멍들 것이다. 그리고 아무도 모르게 떨어져 사라질 것이다. 순백의 고귀함은 쉽게 망가진다.

한때, 정확히는 사랑에 처음 실패했을 때 '사람은 죽기 위해 사는 것'이라는 명제에 꽂혀 살던 적이 있다. 그런 생각들로 생애 처음 완성했던 단편소설에 '목련처럼 피고 동백처럼 지고 싶다'라고 적었다. 결말은 대부분 고귀하지 않다는 걸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희망한다. 목련을 닮지 않은 죽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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