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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Heath Jul 03. 2024

240703' [.]유치

장마, 구름, 사이, 빛, 빼꼼, 양치

퇴근길에 걷힌 구름 사이로 반가운 햇빛을 만났다. 아이의 여린 잇몸에 돋아난 유치를 발견한 기분이랄까. 바람은 여전히 습기를 머금고 내 몸을 핥고 지나가는 것 같았지만 눈이라도 산뜻해졌으니까 그저 좋았다.

식사를 마치고 욕실에 들어가 양치를 했다. 그리고 세안을 하고 머리를 감고 몸에 비누 칠을 했다. 순간 보통의 나는 거품이 묻은 몸을 헹굴 때 시계방향으로 돌아 헹궈왔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오늘은 다소 유치하게 스스로에게 반항하고 싶은 기분이 들었달까,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아가며 더운물에 몸을 헹궜다. 그러면서 흘러간 생각은 이에 닿았다.

그래도 삼세판은 되는 세상에 치아는 두 번(유치와 영구치 또는 젖니와 간니)의 기회밖에 허락되지 않는 단호한 법칙 위에 나고 자란다. 뼈라고 믿었던 것이 엄연히 말해 뼈가 아니며, 단단해 보여도 온도와 통증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들처럼 냉정한 현실에 의해 동심은 흔들려 빠지게 되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젖니를 모두 잃어버린 내가 아직도 유치함을 유지할 수 있다는 건(물론 대부분 혼자일 때지만)ㆍㆍㆍ 우습게도 꽤나 감동적이었다.

보통의 나대로 마지막에 가글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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