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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3' [.]단양

빛이 사라졌다고 느낄 때

by DHeath

절벽 끝, 위태로운 초록
징조도 없이 쏟아지는 국지성 호우 같은
그런 낙하에 몸 맡기는 습성

채 익지 않고 떨어진 밤송이는
여행자의 발길 닿은 축축한 길바닥 위
썩어갈 미래
그렇지 않은 평행 우주에서는 큰 나무가 되었나
혹은 더 깊은 동굴 속으로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둠은
빛이 사라졌다고 여기던 시간과 닮아서 탁하다

무얼 위해 발을 내딛을까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같은 질문들
삼켜질 거라고, 뒤돌아보면 안 된다는 소문들
이끼, 낙서, 벽을 지나
망설임으로 나아가는 우리

뒤돌자
보이는 것들은 모두 빛이었다
두려움과 주저는 모두 내 빚이었을까

벽을 타고 머리 위로 떨어진 물방울에 온몸이 축축해졌다
물처럼
그것이 순환하는 길 따라
하늘에 가까워지고
새를 만나고
웃고
번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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