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속 벌목하는 비버를 본 적이 있다. 나무 아랫부분을 부지런히 갉아내고 나서 위태로워지는 나무만큼이나 신중해지는 모습. 피날레에 다다르면 비버는 잠깐의 이빨질을 하고 나선 나무의 소리에 집중한다. 자신의 몸집보다 몇 배는 거대한 나무가 어디로 넘어질지 비버도 알 수 없기 때문에 약 3초간의 작업과 또 약 3초간의 기다림이 반복된다. 그리고 나무가 기우는 소리가 들리면 비버는 본능적으로 그 방향의 반대편으로 몸을 옮긴다.
어떤 기운이 감돌면 그 방향으로 이끌리거나 흘러가는 건 한순간에 일어난다. 스물이 그랬고 서른이 그런 것처럼 기운 나무가 순식간에 넘어지는 것처럼 말이다. 사람들은 비버를 닮은 것도 같다. 운명과 세계 같은 커다란 나무를 겁도 없이 갉아내고 있는 존재들. 머무르고 싶었던 마음이 떠나고 싶은 마음으로 기울고 있는 요즘이다. 기운 마음으로 멋진 집을 지을 수 있을지, 기운 마음에 깔려 숨질지 알 수 없는 요즘이기도 하다. (우지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