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905' [.]망상

어떤 풍경으로부터 시작된

by DHeath

1.
해 질 녘의 빛이 좋은 날이었다
강둑으로 올라가 석양을 향해 섰다
나와 그것 사이에 있는 전선
어딜 가도 쉽게 떨쳐낼 수 없는 전선이 꼭 거미줄처럼 느껴졌다

2.
태풍이 지나간 다음날
강변을 걷다가 수량이 늘어난 강이 우렁찬 소리를 내며 흘러가고 있었다
믹스커피 같은 흙탕물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그 안에 시체가 한 구쯤은 있지 않을까 생각하다가
꼭 내가 밟고 있는 땅이 흙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3.
기차를 타고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다가
외진 곳에 지어진 집이 눈에 들어왔다
아무도 살 수 없을 것 같은 곳에도 사람은 살고 있었고
가보지 않은 미지/오지로도 길은 이어져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런 곳에서는 살 수 없는
알량한 개구리에 불과하단 사실에 좌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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