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이 흘렀지만, 나는 여전히 그 소녀를 잊을 수 없었다. 그녀의 질문이 내 삶의 모든 곳에 그림자처럼
따라붙었다. 창문 밖을 바라보면, 잿빛 하늘 아래 나부끼는 현수막에서 '하제', '내일'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컴퓨터 화면에 띄워 놓은 웹툰 작업 창의 텅 빈 백지가 내게 '당신은 내일을 믿나요?'라고 묻는 듯했다.
잃어버린 '내일'을 채워 넣지 못하는 나를 비웃는 것만 같았다.
나는 그녀의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 싶었다.
'내일을 믿나요?'
그녀의 질문은 내 마음속에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웠다. 나는 다시 펜을 들었다. 이제는 내가 내일을 믿는지, 믿지 않는지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중요한 건, 그 소녀가 나에게 '내일'을 던져주었다는 것이다.
그 순간, 잊고 지냈던 한 사람이 떠올랐다. 내게 늘 '이안아, 네 만화에는 내일이 없어.'라고 말했던 사람.
유진이 형이었다. 한때는 동경했고, 함께 작업하며 미래를 그렸던 선배이자 동료. 그러나 지금은 내 손이
닿지 않는 저만치 높은 곳에서 빛나는 성공한 정신과 의사.
그의 차가운 조언은 언제나 내 발목을 잡는 돌덩이 같았다. 나는 그에게 내일이 없는 이유를 증명하기 위해
발버둥 쳤지만, 결국 그가 옳았음을 인정하고 말았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내가 잃어버린 건 '내일'이 아니라, '내일'을 향한 용기였다는 것을. 하지만, 내게 '하제'라는 단어는 내일을 던져주었다. 그 소녀의 질문은 내게 펜을 다시 쥘 용기를 주었다. 나는 그의 말을 깨부수기 위해 펜을 다시 쥐었다.
나는 낡은 스케치북을 펼쳤다. 어린 시절의 나는 그 스케치북에 '하제'의 새로운 이야기를 채워나가곤 했다. 푹푹 찌는 여름 오후, 방바닥에 엎드려 땀을 뻘뻘 흘리며 연필을 쥐었다. 만화 속 텅 빈 여백에 새로운
페이지를 더해나가는 상상. 나는 그 이야기 속으로 직접 들어가 하제와 함께 걷고 있었다.
'만화책에 갇혀버린 단어 하제. 나는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내가 그린 하제가 스케치북 위에서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눈은 맑고 투명했다.
'이안, '내일'은 사라지지 않아. 왜냐하면 '내일'은... 내가 만든 것이니까.'
내가 그린 하제는 모래판 대신 하얀 종이 위에 동그라미를 그렸다. '네가 어떻게 내일을 만들어?' 내가 묻자, 내가 그린 하제가 씨익 웃으며 연필 끝으로 작은 별을 그렸다.
'이렇게 반짝이는 별들이 '내일'의 조각이야. 내가 이렇게 그려놓으면,
사람들은 이 조각들을 주워서 자신의 '내일'을 만들어 가는 거야. 그러니까 '내일'은 사라질 수가 없지.'
그녀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말은 동화 같았지만, 어쩐지 진짜인 것만 같았다.
'하제, 그럼 나도 '내일'의 조각을 주울 수 있을까?'
내가 묻자, 그녀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응. 물론이지. 네가 펜을 놓지 않으면 돼. 펜을 놓지 않는 한, 너의 내일은 사라지지 않아.'
그녀의 말은 왠지 모르게 마음속 깊이 박혔다.
나는 하제의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펜을 놓지 않으면 나의 '내일'은 계속될 것이라고.
그때의 하제는 이제 어른이 된 나의 눈앞에 서서, 다시 한번 내게 물었다.
'당신은 내일을 믿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