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뷰티의 스펙 경쟁이 끝난 자리, 무엇을 팔아야 하는가

<더케이뷰티사이언스> 인터뷰 회고, 그리고 넥스트 패러다임

by 브랜드 디렉터 한


기획자로서 현장을 누빈 지 어느덧 10여 년이 흘렀다.초기 멤버로 합류해 연 매출 1,400억 원이라는 가슴 뛰는 J커브를 그려내며 시장의 정점을 경험했고, 데이터의 바다 속에서 고객의 마음을 읽는 법을 치열하게 고민해 왔다.


최근 뷰티 전문 매거진 <The K-Beauty Science> 4월호와 인터뷰를 진행했다.지난 시간들을 복기하며 질문에 답하다 보니, 내 머릿속을 맴돌던 거대한 질문 하나가 활자가 되어 명확하게 다가왔다.


"기능이 상향 평준화된 지금, K뷰티는 대체 무엇을 팔아야 할까?"


인터뷰를 통해 동료 기획자, 마케터, 그리고 뷰티 산업을 바라보는 많은 이들과 나누고 싶었던 나의 직관과 해답을 이곳에 조금 더 길게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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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케이뷰티사이언스> 26년 4월호




1. 성분은 '무기'가 아니라 '입장권'이다


시장에는 매일같이 새로운 성분을 앞세운 브랜드들이 쏟아진다. "펩타이드가 몇 ppm 더 들어갔다", "우리가 더 순하고 안전하다"며 끝없는 스펙 경쟁을 벌인다.

하지만 냉정하게 말해, 고기능성은 이제 시장에 입장하기 위한 최소한의 '기본값(Default)'일 뿐이다. 제조사의 기술력이 상향 평준화된 시대에 고객은 더 이상 화장품의 원료적 스펙만을 사지 않는다. 고객이 기꺼이 지갑을 여는 순간은, 화장품이 내 화장대를 '시술대'로 만들어주는 압도적인 경험을 제안할 때뿐이다.

과거 '실크 펩타이드 앰플'을 기획할 때, 나는 제형의 특성을 살려 '집에서 바르는 녹는 실 리프팅'으로 포지셔닝했고, 제품을 주사기 형태의 어플리케이터에 담았다. 실타래 같은 제형을 얼굴에 도포하는 1분 남짓의 행위. 그것은 단순한 스킨케어를 넘어 무너진 턱선이 당겨 올라갈 것만 같은 강력한 시각적·정서적 텐션의 설계였다. 결국 시장을 흔드는 것은 연구소의 차가운 논리를 소비자의 뜨거운 욕망으로 번역해 내는 기획자의 언어다.



2. 데이터는 과거를 방어하지만, 직관은 미래를 개척한다

이커머스 씬에서 데이터는 신앙과도 같다. 하지만 데이터의 함정은 '이유'를 말해주지 않는다는 데 있다. 숫자가 떨어졌다는 결과는 보여주지만, '고객이 우리 브랜드의 화법에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는 맥락은 숫자 밖의 영역이다. 거대한 조직들이 수치 방어에 매몰되어 안전한 치킨게임만 반복할 때, 시장의 판도를 뒤집는 '보랏빛 소'는 결코 등장하지 않는다.

진짜 퀀텀점프를 이끄는 것은 수많은 시장 관찰과 트렌드가 무의식에 쌓여 발현된 고도화된 '직관'이다. 직관으로 거대한 가설의 방향을 잡고, 마이크로 데이터로 검증하며 리스크를 쪼개는 것. 그것이 파괴력 있는 브랜드를 만드는 기획자의 진짜 몫이다.



3. K뷰티의 다음 5년, '정서 케어(Neuro-Glow)'로 향하다

그렇다면 K뷰티는 앞으로 어디로 가야 할까? 나는 화장품이 뇌과학과 심리학을 결합한 '정서 케어(Emotional Care)'와 '뉴로 웰니스(Neuro-Glow)'의 영역으로 확장될 것이라 확신한다.

화장품 뚜껑을 여는 순간의 촉감과 향기, 그리고 피부에 닿는 텍스처가 그날의 스트레스를 완화하고 긍정적인 감정을 끌어낸다면 어떨까. 뷰티 루틴이 곧 멘탈 케어 루틴이 될 때, 소비자는 브랜드와 일회성 거래를 넘어 단단한 서사로 묶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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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야생에서 빚어내는 새로운 챕터

시장의 룰을 깨고 완전히 새로운 고객 경험을 설계하는 과정은 험난하겠지만, 그 어느 때보다 가슴이 뛴다. 머지않아 뷰티 씬에 새로운 화두를 던질 뾰족한 브랜드로 다시 이 지면에 인사를 남길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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