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안의 책장-[선량한 차별주의자]

-어쩌면 우린 모두 선량한 차별주의자

by 고지애

처음 이 책의 제목을 봤을 때, 단어의 조합이 이상하다고 생긱했다. ‘선량하다’와 ‘차별하다 ‘라는 단어가 함께 쓰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선량함은 착함의 다른 이름이고, 차별은 누군가를 상처 입히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책은 말한다.

어쩌면 우린 모두 선량한 차별주의자에서 쉽게 벗어날 수 없음을..


책은 우리가 차별을 멀리 두고 있다고 믿지만, 사실은 그 안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식당의 ‘노키즈존’, 카페의‘노펫존‘ 등 처음엔 단순히 각자의 선택으로 보일 수 있는 부분의 배경에는, 사실 불편함을 피하고 싶은 사회의 무의식이 숨겨져 있는 것이라고 콕 집어 말하고 있다.


그‘선택‘이 누군가에겐 배제의 다른 이름이 된다는 걸, 책을 덮고 난 후 진심으로 깨닫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나 또한 그 구조 안에 존재 했고, 존재하며 살아오고 있었다.


고둥학교 시절, 성적에 따라 반이 나뉘고,성적이 낮으면 ‘못하는 아이’로 분류되던 시절, 누구도 제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이는 없었다.

왜냐하면, 사회는 열심히 하는 자는 당연히 성적이 오르고, 게으르면 뒤처지는 것을 하나의 질서로 분류했지, 그것을 차별이라고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책을 읽고, 그건 노력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였고, ‘성적’이라는 이름으로 학생을 나누는 순간, 우리는 이미 차별의 언어를 내면화하고 있었던 것이다.


저자는 ‘한 개인의 선의만으로 이 구조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나는 그 질문 앞에서 쉽게 고개를 들지 못했다.


나부터 ‘선량한 차별주의자‘이므로..


우리는 다르다는 이유로 구분하고, 때로는 그 구분을 ‘공정함’이라 부른다.

그러나 그 선의는 그 경계 위에 존재하고, 경계 바깥에는 내가 보지 못한 누군가의 상처가 존재한다.


책을 덮으며, 선량함이란 단순히 착함이 아니라 ‘의심함‘일지도 모른다고

내가 믿고 있는 기준이 누군가에게는 또 다른 차별이 될 수 있음을, 늘 의심하는 것.


그렇게 조금씩이라도 나의 시야를 넓히는 것이 우리 모두가 할 수 있는, 가장 인간적인 변화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