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게만큼은 지키고 싶은 마음

짐이 아닌, 그늘이 되고 싶다

by 다락방지기


그럼에도 나는
당당히 곁에 서도 괜찮은 엄마였다.


집으로 퇴원하던 날,

가장 먼저 떠오른 건 딸을 내 옆으로 데려오고 싶은 마음이었다.

하지만 그 바람은 금세 가슴속에서 접어야 했다.


내 몸 하나 책임지기도 벅찬 내가,

초등학생인 딸에게 나의 다리가 되어 달라고

말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날로 딸은 할머니 집에서 지내게 됐다.

엄마는 손녀를 막내딸처럼 애지중지 키워주셨다.

내 딸은 엄마 품 대신 할머니 품에서

따뜻하고 환하게 자랐다.


방학이 되면 집에 와서 함께 시간을 보냈지만,

떨어져 있는 날들이 훨씬 많았다.




그래서일까.

아이의 입학식, 졸업식은 나와는 거리가 멀다고

당연하게 생각해 버렸다.


그런데 고3 졸업을 앞둔 어느 날,

딸이 말했다.


“엄마, 졸업식에 꼭 와줬으면 좋겠어.”


그 한 마디에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

나는 단 한 번도 딸에게 묻지 않았다.

혹시 창피해할까 봐, 혹시 상처가 될까 봐,

나 혼자 먼저 포기하고 지레 물러섰던 거다.


그런데 딸의 세상에서 나는

숨겨야 할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당당히 곁에 서도 괜찮은 엄마였다.




그날 이후로,

나는 딸에게 사랑은 물려주고 싶지만

무거운 짐은 물려주고 싶지 않다는 마음을

더욱 단단히 붙잡게 됐다.


아픈 부모를 둔 자식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 마음이 얼마나 무겁고 때로는 버거운지,

나는 누구보다 잘 안다.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고 싶은 마음과,

그 사람 때문에 내 삶이 잠식되는 건

전혀 다른 이야기다.




집안에 환자가 한 명 있다는 건,

그 환자를 돌보는 보호자가

몇 배는 더 지치고, 아프고, 외로워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는 그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내 딸이 나를 ‘지켜야 하는 존재’로 느끼는 순간이

오지 않기를 바란다.


지금 대학생이 된 딸은,

공부와 함께 자신이 속한 동아리에서

누군가의 집을 고치고, 벽지를 바르고,

작은 힘이지만 세상을 조금 더 따뜻하게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내가 꿈꾸는 건,

그 손길이 앞으로도 자기 삶 속에서

계속 뻗어나가길 바라는 것이다.




대신 언제든 기대어 쉴 수 있는 숲,

울창한 나무가 되고 싶다.

그리고 그 나무 그늘에서,

딸이 자기 삶을 마음껏 펼칠 수 있기를 바란다.




혹시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누군가를 지키느라 지쳐 있다면,

당신 역시 마음 놓고 쉴 수 있는 그늘을 만나길 바란다.

그리고 언젠가 당신 자신도 누군가에게

편안한 그늘이 되어주길 바란다.


사랑은 무겁지 않게, 그늘은 따뜻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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