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라는 여행

Love as a Journey

by 김태규

사랑이라는 여행

Love as a Journey


ㅡ 김태규


우리는

사랑을 시작하며

목적지 없는

표를 먼저 끊었다


서로의 얼굴보다

시간표를

더 오래 들여다보았다


창밖은 빨랐고

우리의 표정은

조금씩 얇아졌다


서두른 여행엔

지도에 구멍만 남는다


사랑도 그랬다


많이 갔다고 믿었는데

손에 남은 것은

영수증 몇 장


어느 저녁

지도에 없는 골목에서

우리는

걸음을 늦췄다


말이 줄자

두 그림자가 겹치고

네 웃음이

또렷해졌다


“오늘은 길을 잃어도 돼.”


그 한마디가

일정을 덜어내고

우리를 남겼다


Slow가 주는 Speed


빨리 훑은 풍경은

목록이 되고


천천히 머문 자리는

식지 않는다


사랑은

도착이 아니라

낯섦에 멈추는 일


우리는

익숙해지지 않은 채

같은 저녁에 닿는다



[작가의 말]


사랑을 하다 보면 자꾸 앞을 보게 됩니다. 어디까지 왔는지, 얼마나 더 가야 하는지를 묻게 됩니다.

그러나 제 마음에 오래 남은 순간은 멀리 간 날이 아니라, 함께 걸음을 늦춘 저녁이었습니다.


속도를 낮추자 서로의 얼굴이 다시 보였습니다. 당연하다고 여기던 사람이, 다시 한 번 낯설 만큼 소중해졌습니다.


사랑은 완성되는 지점이 아니라, 곁에 선 사람을 잃지 않으려 잠시 멈추는 마음에서 깊어진다고 믿습니다. 함께 늦출 수 있다면, 그 길은 이미 충분히 멀리 와 있는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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