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을 벗고
Unmasking Between Lov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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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 김태규
우리는
솔직해지자고 말하지 않은 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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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보이는 얼굴이
사랑의 기본값이라고
서로
자연스럽게 믿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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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괜찮은 사람의 표정을
익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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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치지 않는 쪽의 말을
골라 쓰느라
자주 늦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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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이 비면
마음이 드러날까 봐
먼저 웃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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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줄면
사랑이 식을까 봐
쓸데없는 온기로
자리를 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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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은
거짓이 아니었다
서로를 잃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태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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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워질수록
얼굴은 더 굳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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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은
항상
벗은 다음에야
말할 수 있다는 걸
서로 알고도
미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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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네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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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얼굴로 하루를 보내면
집에 돌아올 때
내가 아닌 것 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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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다가
웃음을 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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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솔직함의 문제가 아니라
피로를
같이 견딜 수 있느냐의 문제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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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는
가면을
탁자 위에 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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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의 맨얼굴보다
먼저
아직 떠나지 않은
손을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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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정도면
사랑은
이미 시작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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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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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연인 사이에서 가면이 어떻게 배려와 생존의 방식으로 작동하는지를 바라보며 썼습니다. 사랑은 진실을 얼마나 말하느냐보다, 지친 상태에서도 곁에 남아 있는 태도에 더 가까울 수 있다고 느꼈습니다. 완벽한 얼굴보다 돌아오려는 마음을 믿고 싶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