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몰래

Quietly, Where No One Knows

by 김태규

아무도 몰래

Quietly, Where No One Knows


ㅡ 김태규


아직 꽃이 아닌 것들이

시나브로 밝아진다


가지 끝도 아닌 곳에서

연두가

자기 안쪽을 몰래 올린다


막 터지기 직전의 봉오리처럼

가만히 묻는다


지금, 너도 그런지


이름 붙이기 전의 떨림이

공기 속을 가볍게 울리고

햇빛은

우리 사이에 오래 머문다


그대와 나 사이에

어제 없던 결 하나 생겨

말하지 않아도

자리가 조금씩 달라진다


다가간 것이 아니라

이쪽이 먼저 열리고 있었다


그대는 모르겠지


이미 봄이 한 발 들어왔다는 걸


보이지 않던 시간이

빛을 가늘게 풀어 들고

가볍게 흔들린다


우리는

만났다고 하지 않는다

피어났다고만

눈으로 건넨다


겹쳐진 두 체온 사이에서

빛보다 먼저

살아 있는 떨림이 번지고


스치지 않았는데도

서로의 하루가

조금 앞당겨진다


오늘 우리의 계절은

막 피어난 자리 위에 서서


아무도 몰래


그대를

꽃으로 피우고


나도

그대의 꽃이 된다


꽃이 된다는 것

서로의 밤에

새벽이 조금씩 늘어나는 일이다



[작가의 말]


어떤 인연은 시작이 크게 드러나지 않고

아주 작은 변화로

조용히 번져 온다고 느꼈습니다.


서로를 바라보는 시간과 공기의 결이 조금씩 달라지는 그 순간을 담고자 했습니다.


이 계절이 지난 뒤에도 마음 한쪽에 작은 꽃 하나 오래 남아 있기를 바랍니다.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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