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는 나를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
그날도 퇴근은 미뤄졌고, 팀장은 자료를 다시 고치라고 했다.
내용이 틀린 것도, 방향이 이상한 것도 아니었다.
그냥 "느낌이 별로"라는 말 한마디였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자리에 앉아 다시 PPT를 열었다.
느낌을 고쳐야 한다는 말은, 사실상 마음을 바꾸라는 말과 같았다.
논리가 아니라 감정의 영역.
그 앞에서 나는 더 이상 사람이 아니었다.
그저 명령에 반응하는 도구, 한 개의 부품이었다.
이름 없는 자리, 역할로만 불리는 존재
회사 안에서 나는 이름보다는 직급으로 불렸다.
보고서에서는 '작성자', 회의에서는 '기획 파트',
메신저에서는 'OO님'이었다.
내가 누구인지보다는 무슨 일을 맡았는지가 더 중요했고, 내가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는 누구의 관심사도 아니었다.
"이거 할 수 있어요?", "이거 오늘까지 되죠?"
묻지 않았다.
명령이었고, 수행 여부만이 중요했다.
그 순간 나는 사람이 아니라
요구사항을 처리하는 시스템이 되었다.
내 몸이 지쳐도, 마음이 무너져도
정상 운영이 기본값
컨디션이 안 좋다고 말해도,
"조심하세요"라는 말 뒤로 바로 업무 지시가 따라왔다.
"이번 주까지만 버텨주세요"는 몇 주째 이어졌고,
"팀 분위기 좀 살리자"는 말은 감정노동의 다른 이름이었다.
눈에 띄게 아프지 않으면,
사고가 나지 않으면,
나는 늘 괜찮은 사람이어야 했다.
지쳐도, 불안해도, 싫어도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언제부터 우리는 사람 아닌
부품이 되었을까?
회사엔 규칙이 있다.
그러나 그 규칙은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회사가 멈추지 않기 위한 것일 때가 많다.
누가 먼저 퇴근하면 안 되는 분위기,
연차를 쓰면 눈치 주는 동료들,
성과가 없으면 사람 자체를 평가되는 구조.
어느새 우리는
누가 더 오래 참는가의 게임 속에 있었다.
지친 사람은 약한 사람이고,
의견 있는 사람은 까다로운 사람이고,
속마음을 드러내면 감정적이라는 딱지가 붙었다.
나는 사람이고 싶었다
나는 그저
사람으로 대해주길 바랐다.
할 수 없을 땐,
안 된다고 말할 수 있는 환경.
불편한 것을 불편하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
성과보다 존재가 먼저 인정받는 조직.
그게 불가능하다는 걸 아는 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래서 이제는 떠나고 싶다.
조직의 부품이 아닌,
내 삶의 주인이 되고 싶다는
매우 인간적인 욕심 때문이다.
마무리하며,
회사는 여전히 돌아간다.
누군가의 감정, 몸, 시간을 갉아먹으면서도
일만 되면 문제없다는 듯 돌아간다.
그러나 그곳에서
사람이 사라지기 시작하면, 조직도 곧 텅 빈다.
지금 회사를 버터내고 있는 누군가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지금 사람인가요?"
아니면 단지
이름 없는 오브젝트로 존재하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