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점점 무뎌졌다

조직 내 상극의 성향과 성격 속에서 버티는 나

by 제드 Jed

어느 날부터 회의가 고통스럽기 시작했다.

무엇 하나 정리되지 않은 발언들,

소리를 높이며 말을 끊는 사람,

혼자 모든 걸 끌어안고 책임지려는 나까지.


우리는 너무 달랐다.


나는 합리적인 설명과 과정을 중시했다.

그들은 속도가 중요하다고 했다.

나는 조율과 의견 수렴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지만,

그들은 이미 결론을 정해두고 움직였다.


회의가 끝날 때마다 나는 지쳐 있었다.

설명하느라, 맞추느라, 설득하느라

혼자서 너무 많은 감정을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르다는 건 틀리다는 뜻이 아니지만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성향이 다르다는 게 틀렸다는 뜻이 아니라는 걸.


하지만 문제는,

그 다름을 인정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데 있다.

다른 사람을 불편해하는 조직 안에서는

결국 누군가 한 명이 계속 자신을 누르게 된다.


내 경우, 그게 나였다.

말끝을 조심하고, 눈치를 보고,

말을 아끼고, 스스로를 합리화하면서

"괜찮아, 괜찮을 거야"라고 되뇌었다.


혼자 예민한 건 아닐까 자책하게 되는 구조


나는 직급에 맞게 일을 해야 한다고 했고,

팀장은 내가 너무 감정적이라고 했다.

나는 생각이 많다고 했고,

그들은 복잡하게 만들지 말라고 했다.


조직은 다수의 리듬에 맞추길 원했다.

그 리듬에 맞지 않는 사람은

무언의 압박 속에 스스로를 줄이게 된다.


그리고 결국엔 묻는다.

"내가 예민한 건가?"

"내가 이상한 걸까?"


그 질문을 반복하다 보면

정작 중요한 질문을 놓치게 된다.

'이 조직이 정상적인가?'라는 본질적인 물음말이다.


퇴사라는 선택 앞에서도 망설이게 되는 이유


버티기 어려운 환경이지만,

그래도 회사는 월급을 준다.

팀장과의 관계는 최악이지만,

일 자체는 익숙하고 나쁘지 않다.

무의미한 회의가 반복되지만,

그 안에서 내가 배운 것도 있기는 하다.


그래서 쉽게 퇴사를 말할 수 없다.

회사라는 곳은, 늘 장점 몇 가지로 버티게

만드는 곳이니까.


그리고 그 장점은,

사람보다 일 중심인 경우가 많다.

사람이 불편해도, 일은 할 수 있으니까.



마무리하며,


조직 안에서 성향이 다르다는 건 흔한 일이다.

하지만 그 다름을 존중받지 못하는 구조에 있다면

그건 단순한 차이가 아니라,

삶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리스크다.


회사는 공존을 말하지만

정작 공존을 위한 여유나 배려는

각자의 몫으로 남겨둔다.


그래서 버티는 사람일수록 더 지지고,

더 오래 참는 사람일수록 먼저 떠난다.


만약 지금

조직과 너무 다른 나 자신이 견디고만 있다면,

그건 당신이 약해서가 아니다.

그저, 너무 오래 혼자 맞춰왔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