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느리게, 아주 조용히 다시 걸어보는 연습
1. 급하게 뭔가 하려다 실패한 이야기
퇴직 후 2개월쯤 됐을 무렵이었다.
나는 뭔가를 해야 할 것만 같았다.
세상이 나를 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격증 학원에 등록했고,
온라인 강의도 들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마음이 따라주지 않았다.
머리는 흐릿했고, 집중도 안 됐다.
결국 한 달도 안 돼 포기했다.
나는 아직 회복되지 않은 몸을 가지고
전속력으로 달리려 했던 거다.
그땐 몰랐다.
쉼 없이 달리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조금 멈추는 용기, 나에게 그게 필요했다.
2. 남들처럼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깨달음
은근히 주변을 의식하게 된다.
누군가는 퇴직하자마자 창업을 하고,
누군가는 귀농해서 바쁜 일상을 SNS에 올린다.
누군가는 해외여행 사진으로 '제2의 인생'을
증명한다.
그런데 나는 어떤가?
나는 아침에 일어나 조용히 걷고,
작은 카페에서 혼자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나만 너무 뒤처진 건 아닐까?
하지만 어느 날 이런 생각이 들었다.
‘다들 다른 속도로 가는 거구나.’
남들처럼 하지 않아도 괜찮다.
내가 지금 필요한 건,
남들이 인정해 주는 변화가 아니라,
내가 나를 받아들이는 변화다.
3. 은퇴 후의 시간은 '소비'가 아닌 '설계'
퇴직 후 처음엔 시간을 채우기 바빴다.
‘뭔가 해야 한다’는 강박은 생각보다 무서웠다.
드라마를 보고, 산책을 하고, 카페에 가고,
책을 읽어도 자꾸만 죄책감이 밀려왔다.
"이래도 되나..."
하지만 어느 날, 달력이 눈에 들어왔다.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은 달력.
그걸 가만히 보다 문득 생각이 들었다.
이 빈칸을 채우는 건, 이제 내 몫이구나.
타인의 일정표가 아니라,
회사 회의실의 캘린더가 아니라,
진짜 내 인생을 설계하는 시간.
이제는 시간을 소비하는 게 아니라
시간을 기획하려 한다.
작은 실험들이 모여
내 삶의 루틴이 될 수 있도록.
4. 매일 걷기 시작한 이유
처음엔 그냥 걸었다.
운동 삼아, 기분 전환 삼아,
시간을 때우는 기분으로.
그런데 걷다 보니 묘하게 마음이 편해졌다.
차가운 아침 공기, 떨어진 나뭇잎,
어느새 익숙해진 이웃집의 강아지까지.
걸을 때는 이상하게
불안도, 쓸쓸함도,
가만히 따라 걷는 듯했다.
어느 날은 나도 모르게 속샀였다.
“괜찮아, 잘하고 있어.”
걷는 건 단순한 행위가 아니었다.
내 안의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이고,
나에게 집중하는 훈련이었다.
요즘 나는, 하루에 한 번 나를 안아주는
마음으로 걷는다.
5. '의미 있는 루틴' 만들기의 시작
누군가는 루틴을 생산성과 연결시킨다.
하지만 내 루틴은 조금 다르다.
의미를 찾는 루틴이다.
아침엔 6시 30분에 일어나 커피를 내리고,
10시쯤 동네를 한 바퀴 걷는다.
점심은 가능하면 직접 만들어 먹고,
오후엔 책을 읽거나, 글을 쓴다.
거창하지 않다.
하지만 이 리듬 속에서 나는
내 삶의 중심을 다시 세우고 있다.
이 루틴은 나를 증명하는 수단이 아니라
나를 안정시키는 기반이 되어준다.
어떤 날은 흐트러지고,
어떤 날은 게을러지지만,
그럼에도 다시 돌아오는 이 리듬이
이제는 내 하루의 안전벨트다.
퇴직 이후,
나는 다시 배우는 중이다.
내가 나를 돌보는 법,
내가 나를 인정하는 속도
이제는 더 이상 남의 시계를 따라가지 않는다.
이제는 내 속도로 걷는다.
느리더라도, 나에게 맞는 리듬으로.
그리고 그게
진짜 나답게 사는 법이라는 걸
알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