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4. 새 학기, 새 친구 그리고 새로운 생활

남아공 생존일기

by 제드 Jed

남아공에서 두 번째 학기가 시작되었다.

남아공의 새 학기는 1월에 시작한다.

한국에서라면 한파의 기운이 느껴질 무렵이지만,

남반구인 이곳은 한여름이었다.


새로운 학기가 시작된다는 건,

언제나 설렘과 불안을 동시에 안고 오는 일이다.

낯선 땅에서의 두 번째 학기.

달라진 건 계절뿐만이 아니었다.


학교 기숙사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기숙사 인원이 크게 늘었고,

그만큼 외국에서 온 친구들도 많아졌다.
아일랜드, 독일, 앙골라, 프랑스, 미국

그리고 일본


지구 반대편에서 모인 학생들이

한 지붕 아래에서 함께 생활하게 되었다.

그중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일본에서 온 학생, ‘토시(Toshi)’였다.


내가 이곳에 처음 왔을 때와 같은

불안한 눈빛으로 사감의 설명을 듣던

그의 모습이 낯설지 않았다.
같은 동양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우리는 빠르게 가까워졌다.


나는 그에게 학교 수업 방식과 기숙사 규칙,

식사 시간, 다이닝룸 위치 같은

아주 소소한 것들을 하나하나 알려주었다.


그가 묻기 전에, 내가 먼저 말해주려 애썼다.
왜냐하면 나 역시 누군가의 그런 도움이

간절했던 시절을 겪었기 때문이다.


토시와 나는 영어로 대화를 했다.

물론, 둘 다 서툰 영어였기에 때로는

손짓 발짓이 더 많았고,
서로 다른 단어를 써서 한참을 헛갈리기도 했지만,

오히려 그게 더 친근했다.


완벽한 문장이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려는 그 진심이 친구가 되기에

충분했으니까.


새 학기에는 주말에도 사감 선생님이

기숙사에 상주하게 되었다.
외국인 학생이 많아지자,

주말 동안 외출 프로그램이 생긴 것이다.
가장 자주 간 곳은 근처의 몰(mall)이었다.


몰에 가면 우리는 밀크셰이크와 피자를 먹고,

게임도 하고, 영화를 보며 시간을 보냈다.


처음 영화를 봤을 때는 화면 아래 자막이 없다는

사실에 적잖이 당황했다.
"자막은 어디 있지?"
그 순간, 나는 한국 극장의 익숙함에 얼마나

의존하고 있었는지를 깨달았다.


물론 대부분의 대사는 알아듣지 못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장면과 표정, 음악만으로도

이야기가 전달되었다.


그게 영화의 힘이었고,

어쩌면 우리가 배우고 있던 언어보다 더

직관적인 ‘이해’의 방식이기도 했다.


영어는 부족해도 식당에서 먹고 싶은 메뉴는

정확하게 주문할 수 있었다.


손가락으로 메뉴판을 가리키며

“This one, please!” 하면,

누구든 웃으며 알아들었다.
그런 소소한 성공 경험이 쌓이면서

우리는 자신감을 얻어갔다.


외국 학생이 늘면서 기숙사 환경도

눈에 띄게 달라졌다.
세탁기 사용 시간이 늘어났고,

식단에 더 다양한 음식이 추가되었다.
청소 주기도 더 자주 이루어졌고,

벽에는 각 나라 국기와 환영 인사가 걸렸다.


기숙사는 더 이상 단순히 잠만 자는

공간이 아니었다.
서로 다른 문화를 만나는 교차점이 되었고,

우리 모두에게 배움의 장이 되었다.


토시는 나에게 일본식 인사말을 알려주었고,

나는 그에게 한국의 인사 예절을 이야기해 주었다.

각자의 언어, 문화, 음식, 그리고

소소한 일상 이야기들이

기숙사의 밤을 따뜻하게 채웠다.


낯선 땅에서 시작된 새로운 학기.
그리고 그 속에서 만난 새로운 친구들.
그 경험은 내 안의 ‘이방인’이라는 정체성을

조금씩 녹여주었다.


이제는 나도,

누군가에게 이곳을 소개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이 뿌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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