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공 생존일기
새 학기가 시작되고 얼마 안 지나,
학교에선 전교생이 참가하는 행사가 열렸다.
바로 아웃워드 바운드(Outward Bound)
프로그램.
이 프로그램은 팀워크와 인내,
자립심을 기르기 위한 학교의 전통 행사였다.
우리말로 하면 "야생 생존 훈련 캠프"쯤 될까?
학교에서 차를 타고 4시간을 달려
나이스나(Knysna)라는 해안 도시 근처
숲으로 향했다.
거긴 말 그대로 문명과는 거리가 먼,
자연 그 자체였다.
와이파이? 전기? 화장실? 샤워실?
그런 건 없었다.
우리 학년은 50여 명 정도였고,
10명씩 5개 조로 나뉘었다.
우리 조에서 나는 식수 담당이 되었다.
내가 자진했다.
사실 나도 자신은 없었지만,
누군가는 해야 했고… 그냥 손이 먼저 올라갔다.
괜히 눈치도 보였다.
식수 담당은,
프로그램 기간 동안 팀원이 마실 식수를
챙겨서 다녀야 했다.
팔이 찢어질 것 같았다. 어깨가 빠질 듯했지만,
괜히 힘든 티는 내기 싫었다.
아무 말도 안 하고 그냥 걸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이건 내가 해야 할 일’ 같았다.
행사 3일째부터는 냄새나는 옷이 기본이고,
땀범벅, 먼지범벅, 진흙투성인 몸은 기본이다.
화장실? 없다.
숲 어딘가에서 조용히 해결하는 거다.
샤워? 없다.
근처 계곡물에 풍덩 빠지면 그게 샤워였다.
평소였다면 누군가 먼저 불만을 터뜨렸을 텐데,
여기선 아무도 투덜대지 않았다.
모두 당연한 듯 받아들이고, 묵묵히 움직였다.
밤이면 모닥불이 켜졌다.
불꽃을 바라보며 저녁을 해 먹고,
조용히 앉아 하루를 돌아봤다.
“오늘 어떤 기분이었어?”
하루가 끝나면, 선생님이 조용히 물었다.
친구들이 각자 영어로 자기 생각을 말했다.
나는 말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다.
“Good… very fun… good day…”
그 정도가 전부였다.
그런데, 친구들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 마음을 알아주는 것 같았다.
4일째 되는 날엔 뗏목 미션이 있었다.
빈 드럼통과 밧줄,
나무판자를 조합해 강을 건너야 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나 보던 장면을
우리는 맨손으로 만들고,
흐르는 강물에 던져서 직접 건넜다.
누구 하나 빠짐없이, 정말 열심히 했다.
말없이, 서로 도우며.
물이 온몸을 적셨지만, 이상하게 기분은 맑았다.
우리가 해냈다는 사실이 뿌듯했다.
그리고 마지막 날 밤.
역시 모닥불 앞.
오늘은 ‘감사의 말’을 나누는 시간이었다.
친구들이 하나둘씩 얘기하기 시작했다.
누구는 말을 멈추고 조용히 눈을 닦았고,
누군가는 말끝마다 목소리가 떨렸다.
그리고 놀랍게도,
많은 친구들이 나에 대해 말을 했다.
“Minwoo, thank you for the water. “
“Minwoo, you never complained.”
“Minwoo, always helped everyone.”
“Minwoo, I saw you. You were amazing.”
나는 갑자기 목이 메었다.
‘내가 뭐 대단한 걸 했다고…’
그저, 물통을 옮겼을 뿐인데.
그날 밤 나는 진심으로 느꼈다.
진심은 언어를 넘어선다.
사람은 말을 잘해서 감동시키는 게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는 거구나.
그렇게, 물통을 든 동양인 소년은
친구들의 가슴속에 조용히 자리 잡았다.
아웃워드 바운드는
내게 평생 잊을 수 없는 기억이다.
내가 누군가의 기억 속에,
‘말은 없지만 묵묵히 함께해 준 친구’로
남았다는 게
참… 따뜻했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진짜로 이곳에 속해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날 이후, 나는 더 이상 ‘낯선 이방인’이 아니라
그냥 ‘민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