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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하늘 May 03. 2023

23. 5. 3.

보폭

몇 달 전 진해로 친구가 놀러 왔다. 중학생 때부터 야구를 하며 친해진 녀석이었다. 흙먼지 날리던 곳에서 이리저리 구르기도 하고 손에 물집까지 잡혀가며 함께 야구공을 쥐고 뛰어놀던 친구였다. 그런 친구 녀석과 이제 밖에선 서로 어엿한 직장인 혹은 누가 봐도 영락없는 아저씨가 된 것이 새삼스레 퍽 우스웠다. 우스운 일은 불과 1년 전에도 있었다. 차를 타고 가는 중에 친구가 말했다.


-이것만 되면 뭐든 행복할 줄 알았는데.


일 년 전 친구도, 나도 취업준비 중이었고 각각 CG업계, 공무원을 꿈꾸며 둘 다 분투하며 살았다. 그리고 일 년 뒤 거짓말처럼 서로가 얘기했던 그 공간에서 일하고 있다. 놀랍게도 우리는 우리가 일 년 전 꿈꾸던 그곳에 있는데도 생각처럼 행복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냥 산다'라고 얘기할 정도로 일상이 심드렁했다. 이런 심정의 변화의 뿌리를 쫓다 해답을 찾았다. 바로 인도 북동부에 위치한 나라, 부탄에서.


그 이유를 무려 히말라야의 끝자락에 있는 부탄, 뜬금없이 그 먼 나라에서 찾았다니 의아할 수도 있겠다. 언젠가 부탄에 관한 흥미로운 기사를 읽었다. 부탄은 법적으로도 산림면적을 60% 이상으로 유지할 정도로 문명의 속도에 반하는 나라인데, 1970년대엔 관광객마저 연 2만 명 이하로 제한할 만큼 보수적이었다. 이런 변방의 나라가 국제적으로 눈길을 끌기 시작한 것은 2010년 '국민행복지수' 결과가 드러난 직후였다. 국민 소득이 총 2000달러도 미치지 않는 조그맣고 가난한 나라임에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로 꼽힌 것. 당시 행복지수는 97%로 무려 백 명 중 세 명만을 제외한 모든 사람이 행복하다고 얘기했다. 물론 통계 결과를 맹신할 순 없지만 통상 '풍요에서부터 여유가 나온다'는 통념을 깨는 결과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이렇게 행복지수가 높은 부탄의 모습은 오래가지 않았다. 7년 뒤 같은 설문에서 부탄은 무려 반토막인 50% 정도의 사람만이 행복하다고 얘기했다. 농촌과 도시 양극화가 심해지며 상대적으로 농촌에 거주하는 사람들, 그중 특히 농촌산업의 한가운데인 농부는 가장 낮은 행복지수를 기록했다. 나는 부탄사람들에게서 행복을 앗아간 가장 큰 이유를 박탈감에서 찾았다. 비교를 하기 시작한 것. 아마 친구와 나 사이에도 그토록 바라던 미래가 심드렁 해진 이유는 바로 비교를 하기 시작한 직후부터 아니었을까.


신기한 점은 이 '비교'가 끝이 없다는 것이다. 아마 아직까지 내가 합격하지 못하고 독서실을 전전하고 있었다면 여전히 내 꿈, 가장 아름답게 그리는 미래는 공무원에 합격한 내 모습일 텐데 문제는 그때가 되면 또 내 시각이 바뀐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지금 내 꿈이 '좋은 책 한 권을 출판하는 것'이라면 이상하게도 책 출판을 하고 나면 나는 다시 다른 꿈을 꾸게 될 거라는 점이다. 이제 적어도 출판에선 이전만큼의 행복을 찾을 수 없으을 테니까. 분명 이런 사고는 인간이 성장하는 큰 원동력이 될 것임은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그날 차 안에서 친구와 얘기하며 나는 이 흐름에 잠식되지 말자고 다짐했다. 그래서 내가 했던 다짐은 미리 내 울타리를 정해놓는 것, 행복의 역치가 너무 커지지 않게 미리 문단속을 해놓는 것, 마음이 내 몸집을 넘어서까지 잠식되지 않도록 자물쇠를 꼭 채워두는 것. 그게 지금 내가 미리 해야 할 일이라 생각했다.


누군가는 그렇게 살면 성장할 수 없다고 반문할 수 있겠다. 이전에 어떤 방송을 보며 한 명의 진행자와 한 명의 게스트가 하던 얘기를 들었다. oo님, 한 번뿐인 인생이니까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아봐야 하지 않을까요?" "아니죠 oo님, 한 번뿐인 인생이니 천천히 즐기며 살아야죠." 이렇듯 사람마다 생각은 다르고, 그래서 세상은 다채롭다. 누군가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 본인의 입맛대로 사는 것이 정답 아닐까. 한 번뿐인 인생이니 구슬땀 흘리는 꿀벌보다 바람을 느낄 줄 아는 베짱이가 되어야겠다. 내 보폭은 늘 그랬듯 내가 걸을 수 있는 만큼만, 헛디디지 않을 정도로 사뿐히 걸으려 한다. 너무 크게 걸어 넘어지지 않게, 너무 바쁘게 걸어 주변을 못 살피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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