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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하늘 Jul 04. 2023

23. 6. 30.

해난구조교육을 마치며

사는 건 계절과 같아서 가끔씩 뜨거워지고 다시 차가워진다. 뜨거울 땐 이성이 작용하지만 차갑다는 건 이성과 먼 속성이라 우리는 우리가 차갑다는 걸 인지하지 못한다. 교육 시작 전 난 굉장히 차가운 시기에 살고 있었다. 겨울처럼 나의 밤은 늘 일찍 찾아왔고, 또 그 밤은 깊었다. 센터 일을 하다 보니 어느 순간 매너리즘에 빠졌다. 햇병아리 소방사 주제에 건방진 말일 수 있지만 그랬다. 난 그렇게 차갑게 식은 채로 마른 배춧잎처럼 몇 날며칠을 그저 살아만 갔다.

어느 날 전화가 울렸다. 행정과 교육담당자였다.

-반장님 안녕하세요. 혹시 이번에 해난구조 신청하셨던데 맞나요?

-아 네 맞습니다.

-확인했습니다. 반장님 혹시 입단테스트 있는 건 아시죠?

 

순간 머리가 띵,

아, 맞다 테스트가 있었지.

-아아 네 알고 있습니다.

-테스트 합격가능하시죠? 혹시 도중에 떨어지는 불상사가 있을까 봐 노파심에 여쭤봅니다

-네 문제없습니다.

 

호언장담하는 말과는 다르게 내 가슴은 쿵쾅쿵쾅 뛰기 시작했다. 새까맣게 잊고 있다 문득 떠오른 테스트 사실에 적잖이 당황한 나는 다음날 다이빙 풀에 뛰어들어 입영을 연습했다. 얼어붙은 손발이 풀리기 시작했다. 마치 봄이 온 듯했다.

 

어느덧 입교날이었다. 긴장반 설렘반으로 가득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카톡”


-좋은 아침입니다. 금일부터 교육이 시작됩니다. 첫 시간 마치면 수난구조훈련센터로 오셔서 수영복으로 갈아입으시고… 입교테스트는 10시에 시작됩니다. 입교테스트는 400미터 수영, 입영 10분, 5분(손들고)입니다.


‘하… 손들고 5분?’ 갑자기 기가 팍 죽었다. 공문엔 분명 2분이라고 했는데 어떻게 2배가 늘어나? 미쳤네. 나 이러다 오늘 짐 싸고 가겠다.

 

하지만 걱정과 다르게 첫날 테스트는 무사히 끝냈다. 그렇게 테스트를 마친 다음날부터 본격적으로 훈련이 시작됐다. 훈련은 정말 현장에서 사용할 수 있는 것들로, 어떤 규정이나 절차가 정해져 있는 고리타분한 것들이 아니었다. 그리고 팀단위 훈련이 많아 흥미로웠다. 언제 하루는 케틀벨 10kg짜리 2개를 두 개조가 협업하여 5분을 버티는 훈련이 있었다. 아무리 입영을 잘한다 해도 10kg짜리를 손에 쥐게 되면 그자리에서 저절로 물속으로 몸이 빨려 들어간다. 수상에서의 10kg은 육상에서 그 이상의 무게였다. 그 무게를 겨우겨우 여러 사람이 옮겨가며 버티고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다들 한계가 왔다. 숨을 헐떡이는 소리가 점점 커졌다. 이제 난 끝이다 싶었는데 동기형님께서 웃으며 “괜찮아 숨 쉬어! 내가 좀 들고 있을 테니까” 하고 10kg짜리 케틀벨을 쥔 채 유유히 입영을 하는 게 아닌가. 그날 이후로 이 사람들을 완전히 믿고 따르게 되었다. 원팀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가슴이 뜨거워지는 순간들이었다.

 

첫 주차 훈련을 무사히 마친 뒤 바다로 떠났다. 해운대, 송정, 구덕포항, 송도, 암남공원을 거치며 점점 자신감이 붙었다. 처음에 어색하던 장비도 이젠 요령 있게 물을 조금 넣어 쉽게 입는가 하면 교관님도 가르쳐 주지 않은 것들을 동기형님께 물어가며 체득하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파도가 너울성 파도일 땐 넘어가고 백파처럼 부서질 땐 머리를 바짝 숙이고 피해 가는 것, 바다수영할 땐 팔을 깊이 넣고 길게 길게 뻗는 것. 동기들과 관계도 짙어지고 팀원들과 호흡도 척척 맞아떨어졌다. 우리는 몹시 뜨거웠다, 여름처럼.

 

그리고 오늘 우리는 헤어졌다. 경기, 인천, 울산, 경남, 경북,, 등등 세기도 힘들 정도로 많은 시도에서 온 18명은 후를 기약하며 발걸음을 돌렸다. 또 만날 때가 언제일지 모르겠다. 언젠가 지금을 되짚어볼 때 어떻게 기억될지 모르겠으나 적어도 낭만 있었던 때라고 기억할 것 같다. 충분히 낭만 있던 사람들, 그리고 그 속에 나. 그 사실 하나만으로 다시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가도 겨울처럼 힘들진 않을 것 같다. 당연히 내 일상은 변함없고 마찬가지로 센터생활, 사람들도 마찬가지겠지만 기꺼이 어떤 것에 다시 도전할 기운을 얻었다. 내가 3주 동안 배운 건 어쩌면 수영이 아니라 낭만있게 살아가는 법, 그런 사는 법에 대한 것들이었다. 낭만에 젖은 이파리들은 홀연히 가을처럼 떠나 낙엽이 되었고, 난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원래 익숙했던 장소가 이젠 오히려 낯설다. 3주동안 벌어진 조그만 겨울-봄-여름-가을 사계절이 만든 나이테를 내가 다시 무기력해질 때, 내 손발이 꽁꽁 얼어 시릴 때 소중하게 열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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