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하늘 Jul 14. 2023

23. 7. 4.

커피


커피는 굉장히 다양한 의미를 담는다. 이를테면 "밥 한 번 먹자"와 비슷한 선상에 있는 의미의 단어랄까. 어떤 의미에선 사랑스러운 물체가 되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선 부탁의 의미나 사무적인 약속을 잡는 매개체가 되기도 한다. 이번 내 경우엔 부탁의 의미가 강했다.


내가 커피를 여덟잔이나 사게 된 건 며칠전 교육 때문이었다. 끓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다 정신을 차려보니 그만 구조대 앞에 커피까지 사들고 오게 된 것이었다. 방법은 뭔지 모르겠지만 우선 구조대에 가고 싶다. 그게 이유였다. 지금 근무하는 센터에서 내가 맡고 있는 업무는 화재진압이다. 화재진압대원은 말그대로 화재가 발생했을 때 소화하는 임무다. 우리 소방관의 다른 업무로는 구급과 구조가 있는데 난 구조업무에 흥미를 가지게 됐다.


화재진압업무는 차량 화재나 건물 화재, 공장 화재 등 화재에 국한되는 반면 구조업무는 문개방, 인명검색, 수난사고 등 다방면으로 많은 부분에 연계된다. 난 이번 교육을 시작으로 수난 분야에 관심이 많아졌다. 더 깊게 파고들고 싶고, 더 잘하고 싶어졌다. 그런데 센터에서 화재진압대원으로 근무하면 구조교육에 참여할 기회를 얻기가 쉽지 않다. 이번 교육도 정말 운좋게 창원에 참가하는 구조대원이 없어 센터까지 인원이 내려온 것이다.


그렇게 해서 커피를 들고 구조대에 방문하니 사무실에 몇 분의 구조대원이 있었다. 입술을 달짝이며 우물쭈물하다가 어렵게 입을 뗐다.


-인명구조사를 따고 구조대에 근무하고 싶습니다.


다행히 긍정적으로 봐주셨다. 사실 받아줄거란 자신감이 있었다. 왜냐하면 입장 바꿔서 누군가 센터로 무언가를 배우러 온다고 했을 때 나같아도 꽤 기특하게 여길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기분좋게 내 예상을 들어맞았고, 다음달부터 함께 훈련하기로 했다. 내가 좋아하는 우리 수난구조교육 형님 동생들에게 이 소식을 전하니 정말 축하한다고 얘기해줬다.


예전에 그런 때가 있었다. 인간으로서 예전 예전 하는 단어를 입에 담고 사는 것이 썩 바람직하다 생각하진 않지만 아무튼 그런 때가 있었다.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시기. 난 정말로 내가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다만 문제는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뭐든 맘 먹으면 할 수 있는 것이고, 시간이 얼마 걸리느냐 그 차이일 뿐이라 여겼다. 스무살 때 작성했던 버킷리스트엔 '요트로 세계여행하기' 가 있었다. 난 정말 진심으로 그 버킷리스트를 썼다.


요즘 내가 그 기분이다. 앞자리 숫자가 바뀌었지만 그때를 사는 것 같다는 착각이 든다. 땀내나던 시절, 아무것도 모르고 부딪히던 짱돌같던 시절, 주먹구구식으로 뭔가를 저돌적으로 헤쳐나가던 시절, 요즘엔 까닭없이 하면 될 것 같은 확신이 든다. 허세인지 아닌지 내가 미래의 나에게 증명하면 될 일이다. 증명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지금 집중해서 하나하나 하면 될 일이다.

작가의 이전글 23. 6. 30.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