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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하늘 Aug 25. 2023

23. 8. 25.

수중훈련


9월 중순 인명구조사 시험을 앞두고 훈련 중이다. 시험이나 자격증을 준비하는 과정은 꽤 지루하고 반복적인 작업이 필연적으로 생기게 된다. 마치 도자기를 만들듯 선별해서 고른 흙을 물과 섞어 점토로 만들고, 아무렇게 생긴 점토 더미를 도자기 모양으로, 다시 그 도자기 모양을 완곡한 곡선으로, 다시 그 곡선을 구워 경도를 강하게 만들어 비로소 하나의 작품을 만드는 일. 그것이 시험과 자격증을 준비하는 과정과 유사하다. 예전에 한식조리자격증을 준비한 적 있는데 파를 무조건 5cm로 썰어야 했다. 5cm가 넘거나 모자라면 감점사항이었고 그때 선생님께 배웠던 방법은 내 손가락 마디 어디쯤을 기준으로 잡는 것이었다. 난 두 번째 손가락 두 마디까지 하면 딱 길이가 맞았고 시험을 칠 때 손가락에 대고 길이를 가늠했다. 끝내주는 국물보단 정해진 시간에 보기 좋은 음식을 내놓는 것이 중요했고, 그러기 위해선 같은 요리를 몇 번이고 도자기 다듬듯 섬세히 '작업'해야 했다. 그러다 보면 시간 안에 썩 정갈한 상태의 작품이 나오게 된다. 지금 하는 훈련도 비슷하다.


이런 한 종목을 여러 번 시도하며 깎고 깎는 과정은 썩 유쾌하지 않다. 매번 같은 행동을 반복하다 보면 지루해지고 집중이 흐트러진다. 그러다 보면 성적이 안 나오게 되고 흥미도 떨어지게 된다. 성적이 안 나옴 > 흥미가 떨어짐 > 연습을 멀리하게 됨 > 성적이 안 나옴 이 악순환의 반복이 발생한다. 그럼에도 이 악순환의 고리에 빠지지 않았던 이유는 내가 하고 싶어서였다. 한식조리기능사 때도 지금 하는 인명구조사 훈련도 누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라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이라 기꺼이 했다. 귀찮아도 신발을 신고 훈련장으로 나서는 원동력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이라 그렇다.


힘들고 지루한 훈련 중에 가끔 단비처럼 오는 희열의 순간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오늘 다이빙 풀장 안에서 갑자기 압력평형을 만들었다. 부력을 컨트롤할 수 있어야 내가 원하는 지점에서 정지할 수 있는데 난 그게 안 됐다. 같이 훈련하는 대원들은 하나같이 다 잘하는데 나만 안 됐다. 고요한 물속에서 온 신경을 모아 내가 뜨고 가라앉는 그 순간만을 집중했다. 부력조끼에 가득 차있던 공기를 뺀다. '푸슉'하는 소리와 함께 공기가 일정한 속도로 빠져나가는 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진다. 빵빵했던 조끼가 점점 홀쭉해질 때쯤 몸이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한다. 시선은 수면 위였다가 수면을 바라봤다가 서서히 물에 잠긴다. 턱, 입술, 코, 이마, 그리고 머리카락이 물에 흠뻑 젖기 시작한다. 나를 버티고 있던 공기방울과 내가 가진 무게 사이의 평형이 깨졌다는 증거다. 몸이 서서히 가라앉다가 수심 2미터가 되면 숨을 크게 한 번 들이쉰다. 공기를 한껏 품은 폐는 부력을 발생시키고 다시 한번 몸을 살짝 띄운다. 몸이 붕 떴다 싶을 때 숨을 뱉는다. 이때 공기방울이 아주 조그맣게 입술을 통해 나올 정도로 약하게 내뱉어야 훅 가라앉지 않는다. 아주 미세하게 가라앉음이 느껴질 때쯤 뱉는 숨을 멈춘다. 이때 평형이 유지된 것이다. 이 숨을 기점으로 해서 숨을 너무 깊거나 얕게 들이쉬고 마시지 않으면서 편안하게 있으면 몸은 요동치지 않고 고요한 물처럼 가만히 그 상태를 유지한다. 오늘 평형을 유지했을 때, 나 홀로 고요한 그 공간에 머무는 듯했다. 지루하고 긴 시간 속에 오랜만에 맞는 단비였다.


사는 건 아홉의 지난함이고 하나의 희열임을 믿는다. 아니 그렇게 믿기로 했다. 그렇게 마음을 먹으니 사는 게 편해졌다. 가끔 오늘처럼 오는 단비가 있으면 된다. 그럼 또 아홉의 일상을 기꺼이 살아갈 수 있다. 이전에 아이유가 한 영상에서 '너무 행복하면 불안하다. 그렇게 되면 난 너무 들뜨지 않으려 노력한다'라고 했던 적이 있다. 그때 어떤 마음이었는지 이제 짐작한다. '아홉과 하나의 법칙'이 깨지면 나도 조금 불안할 것 같다. 오히려 언제 푹 꺼질까, 이런 지속이 끝날까 날짜를 셀 것만 같다. 긴 연휴가 끝나면 일상에 다시 복귀하기가 버거운 것처럼 너무 큰 행복은 오히려 너무 큰 걱정으로 치환된다. 난 긴 연휴 하나보다 짧은 휴일 두 개가 낫다. 너무 높은 울림에 까닭 없는 거부감이 생기는 이유다.


나의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들은 그냥 '애는 이런 생각하는가 보다' 정도로 이해해 줬으면 좋겠다. 사는 건 모두 제각각이라 결코 내 생각이 옳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편한 대로 살기 위해 만들어 놓은 일종의 아이템인 셈이다. 기대를 낮추면 실망도 적다. 좋은 일이 많은 것보다 싫은 일이 적은 게 내가 원하는 삶의 방향이다. 어제는 비가 잔뜩 내렸다가 오늘은 해가 쨍쨍했다. 오늘 입었던 모양대로 살에 나이테가 생겼다. 점점 구릿빛으로 변해가는 피부가 여름의 막바지를 대변하는 듯하다. 곧 따가운 햇빛은 선선한 바람이 되어, 낙엽이 되어 가을의 품 안에 낙하할 것이다. 시간은 언제나 그렇듯 고요히, 빠르게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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