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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하늘 Nov 09. 2023

23. 11. 3.

두 번째 시체

<1>
어제 소방관으로 일하며 두 번째 시체를 접했다. 첫 번째 시체는 화재출동이었다. 18층 아파트, 방화사건이었다. 공기는 부산스러웠고  불티와 연기가 나뒹굴었다. 수색을 하는 동료와 내 발엔 바스락거리는 유리조각 소리와 우리가 내는 공기호흡기 소리가 바쁘게 방안에 울려 퍼졌다. 그러다 들리는 음성, "여기 있습니다!" 베란다 부근을 수색하던 동료는 방화의 범인이자 사망자인 구조대상자를 찾았고, 구급대원은 바쁘게 구조대상자를 들것에 실어 옮겼다. 그때 내 눈에 맺힌 광경은 시커멓게 그을린 어떤 사람형체의 검정이었고, 다른 구조대상자는 없는지 찾는 마당에 저것이 시체인지 사람인지 생각하는 것은 우선 지금 문제는 아니었다. 그렇게 내가 맞닥뜨린 첫 번째 시체는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2>
두 번째 시체는 어제였다. 오후쯤 출동벨이 울렸다. 경찰의 공동대응 요청. 차량 내부에 사람이 있는데 변사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신고. 우리는 바쁘게 현장으로 달렸다. 차량 훼손을 최소화하라는 팀장님의 말씀에 해머를 내려놓고 차량용 문개방기를 꺼내왔다. 조수석 부근으로 다가가 쐐기를 박았다. 쐐기 주위로 벌어진 틈 사이로 공기패드를 넣고 부풀리자 안에서 불쾌한 냄새가 스멀스멀 기어 나왔다. 처음 맡아보는 시체냄새였다. 아주 습한 썩은 나무가 한동안 방치되어 부패한 듯한 냄새였다. 차창너머론 양은냄비 안에 다 타서 재가 된 번개탄이 놓여있었다. "딸깍" 문이 열렸다.

<3>
초파리인지 뭔지 모를 날파리들이 엉켜 날아다녔고 구조대상자의 몸엔 시반이 발견되었다. 미동 없는 몸 아랫부분에 혈액이 몰려있었다. 생체활동이 멈춘 뒤 혈액이 흘러가지 않은 채 신체 아래에 고여있는, 명백한 사망의 징후였다. 이처럼 명백한 사망의 증거가 발견되면 현장은 경찰에게 인계한다. 구급대와 함께 복귀했다. 이유 모를 저릿함이 가슴을 짓눌렀다. 안쓰러움, 측은함, 연민. 흐리고 축축한 감정이 잠깐 스쳤다. 일면식도 없는 사이지만 인간으로서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4>
문득 사는 게 주파수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느낄 수 있는 감정의 온도가 주파수처럼 정해져 있고, 때로 변한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 신체는 젊을수록 넓은 음역대의 주파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러나 살면서 청각이 노후될수록 너무 높고 너무 낮은 영역의 주파수는 들을 수 없게 된다. 나도 소방관으로 재직하면서 어느 주파수를 놓쳐버리면 어떻게 될까. 이런 연민마저 느끼지 못하고 그저 '시체 한 구'로 생각되는 날이 올까. 일면식이 없다는 핑계로 고인의 명복마저 빌지 않는 그런 매정한 인간이 되진 않을까. 하지만 어떻게 보면 그건 한편으론 꽤 소방관스럽다 얘기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할까. 일과 삶의 분리는 어느 영역까지 지켜지고 침범당해야 하는 걸까.

<5>
가끔 모든 선택이 나한테 달린 것이 달갑지 않다. 그리고 매년 그 선택의 폭이 점점 넓어지는 행태가 난 불안하다. 세상은 빠르고, 나는 느려서 가끔 난 너무 물렁하고 옅고, 나약하고, 연약하다는 인상을 받는다. 내가 손으로 잡을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손틈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알처럼 내가 잡을 수 있는 어떤 것들은 다양한 핑계를 대고 나로부터 멀어진다. 그래서 나는 맹목적으로 글을 쓰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글을 쓰려고 한다. 글로서 한 사건을 오늘의, 내일의 시각으로 다양한 각도로 바라볼 수 있으니 미약한 내가 가진 현명함을 최대한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앞으로 소방관으로 살며 어떤 모습이 될진 모르겠지만 적어도 오늘 어제의 일을 첫 번째로 비춰보며 생각할 기회를 받았다. 다음 이 글을 보며 두 번째 생각할 것이다. 적지 않으면 사라진다. 쓰지 않으면 휘발되니 적고, 적고 또 적어야 한다. 어제 난 두 번째 시체를 접했다. 이 글은 머지않아 세 번째 시체를 접할, 네 번째, 다섯 번째 시신을 접할 나에게 전하는 글이다. 그때 난 무언가 중요한 걸 상실하지 않길 바란다. 지금 글을 쓰는 슬픈 감정에 데면데면해지지 않길, 인간에 대한 연민만은 잃지 않길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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