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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하늘 Jun 30. 2024

더러운 티셔츠

250630

다른 이의 손을 빌려 셀카봉 삼아 찍었던 사진, 23년의 여름이 담긴 그 사진엔 교육생 열여덟 명이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에서 그때의 후덥지근한 온도, 바다의 짠 내, 철썩거리는 파도 소리가 내 코와 귀, 피부를 간질거린다. 사진을 응시하던 난 그 순간으로 점점 빨려 들어갔다.
 
가로수가 초록을 입고 비 냄새가 코를 스치는 여름이 오면 난 이때가 떠오른다. 부산소방학교의 특성화 교육인 해난구조 구급 과정, 이 훈련을 받던 그해 여름은 내 소방 생활의 전환점이 되었던 순간이었다. 지금은 마냥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있지만, 그땐 하루하루가 나를 시험하던 순간이었다. 수난 사고가 벌어지는 현장을 다루는 교육이니만큼 바다에서 마주할 다양한 구조 환경을 극복하는 훈련을 했다. 훈련은 테트라포드, 연안, 원해, 해안 동굴 등 장소를 막론하고 이뤄졌다. 우린 막막한 환경 속에서 해답을 찾아야 했다. 하지만 답은 늘 동일했다. '체력', 결국엔 체력이 해답이었다. 숨이 차면 쉬게 되고, 쉬면 마음이 꺾인다. 한 번 쉬면 두 번 쉬고 싶고, 두 번 쉬면 계속 쉬고 싶어 진다. 기름에 퍼지는 불처럼 커지는 포기 욕구를 훈련 내내 참아야 했다. 훈련 마네킹을 물속에 던져버리고 싶기도, 세차게 젓는 팔을 잠시 쉬고 싶기도, 잠수하던 몸을 물 밖으로 끄집어내고 싶은 순간들을 이 악물고 이겨내야 했다.
 
힘들었던 만큼 훈련은 단연 최고였다. 전국에 있는 어느 시도의 소방학교에서도 이 정도 수준의 교육을 경험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 교육의 주안점은 훈련이 아닌 '사람'이었다. 함께 훈련하는 동기들과 만들어내는 시너지, 그것이 이 훈련의 핵심이었다. 교육 중 만난 형님, 동생들은 모두 내 스승이었다. 내 동기이자 경쟁자이자 스승이었다. 모두 교육 내내 눈빛이 반짝거렸고, 난 그들의 발끝을 부단히 쫓았다. 힘든 교육을 마치고 스스로 헬스장으로 달려가던 형님, 주중에 실컷 훈련을 마친 뒤에도 주말에 휴식 대신 울트라 마라톤을 뛰러 가던 형님, 늘 바다만 가면 쉬는 시간에 입맛을 다시며 '아 저기 등대 한 번 찍고 오고 싶은데' 말하던 형님. 난 어디서도 보지 못한 체력 괴물들을 만나며 하루하루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경외심이 드는 한편 제대로 이들과 경쟁하고 싶었고, 격하게 닮고 싶었다.
 
난 그동안 매너리즘에 빠져있었다. 처음에 소방관이 된 뒤 가졌던 생각들, 목표들은 점점 옅어졌다. 일상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어떻게든 흘러가는 하루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생기 없는 눈동자로 멍하니 하루를 살았고, 원래 꿈꿨던 목표는 아득하고 희미해졌다. 아가미가 없는 난 망망대해 바닥에 웅크려 의미 없는 하루들을 울컥울컥 목으로 넘겨야 했다. 절망적인 것은 그렇게 의미 없는 하루를 삼키면서도, 그렇게 고통스러우면서도, 아무 죄의식 없이 관성으로 그 하루를 하염없이 소비했다는 것이었다. 그때 내 티셔츠는 매일 빳빳하고 쾌적했다. 난 그 티셔츠를 더럽힐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용기가 없었다. 볼품없는 내 모습을 마주할 용기, 썩어버린 내 정신을 다시 재조립할 의지, 일상에 타협하지 않을 힘을 잃은 채 부유했다. 내 몸이 땀으로 젖고, 티셔츠를 돌돌 말아 꾹 짰을 때 땀방울이 뚝뚝 떨어져야 했다. 난 그러기를 바랐다.
 
훈련이 도화선이 되어 형님과 동생을 보며 의지를 잡았다. 이젠 지난한 일상을 부수고 다시 나가야 할 순간이었다. 어느 순간 내 손엔 노가 들려있었고, 허름했지만 꽤 튼튼한 뗏목이 있었다. 형님 동생들은 이미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일렁이는 파도를 거침없이 헤쳐 나가고 있었다. 누군가는 거대한 배를 타고, 누군가는 근사한 모터까지 달린 보트를 타고 파도를 부수고 있었다. 그에 비해 내 배는 허름하고 볼품없는 뗏목이었다. 내가 누군가보다 부족하다는 사실을 마주하는 건 꽤 자존심 상하는 일이기도 했지만, 그때 노를 내려놓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최소한 변화는 노를 잡았을 때야 작용한다. 변화는 정적인 단어가 아니다. 난 내가 아무것도 아니란 걸, 여전히 미생임을 일깨워준 그 여름이 오히려 고맙다. 설령 이곳이 뭍이라도, 질척이는 펄이라도 난 노를 저을 거다. 언젠간 물이 들어올 테니. 난 늘 받기만 하고, 그들은 아낌없이 준다. 난 늘 그들의 푸름을 선망하고 빼앗지만, 그들은 변함없이 반짝거리고, 세차게, 멀리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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