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날 땐 대부분 혼자였다. 지하철을 타고 공항에, 비행기를 타고 타국으로, 다시 그 나라의 호스텔로 도착했을 땐 혼자였다. 혼자 떠나는 여행은 외로웠지만 굳이 낯선 땅에서 친구를 만들진 않았다. 아니 친구를 만들지 못했다. 붙임성이 없었으니까. 낯선 언어로 자기소개를 하는 게 영 부끄러웠다. 난 대부분 혼자였고, 짝 없는 장갑 한쪽처럼 외롭게 길거리를 돌아다녔다.
난 여행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선 모조리 글로 썼다. 오늘의 시간, 감정들을 글로 옮겨 담았다. 내가 무엇을 했고, 날씨는 어땠고, 무엇을 샀고, 어떤 광경을 봤는데 그게 나에겐 어떤 감정으로 다가왔는지 같은 얘기들을 주절주절 일기로 옮겼다. 난 지금 별거 아닌 이 기록들이 나중에 어떻게 보일지 꽤 궁금했다. 내가 훗날 지금을 추억하면 어떤 모양일지 가늠할 수 없었다. 우선 쓰고, 또 썼다. 난 여행에서 남는 것은 내가 남기는 솔직한 생각의 기록들, 그것이 제일이라 여겼다. 기념품 대신, 관광지 대신 글을 남겼다.
홀로 다닌 대부분의 여행은 외로웠지만 나름대로 괜찮았다. 시릴 것 같던 옆구리엔 늘 일기장이 있었으니까. 그럼에도 여행 중 만나게 된 귀한 인연들이 있는데, 가끔 우리나라로 돌아와 이들을 만난다. 난 그들과 얘기하고, 그때를 떠올리며 내 가치관이 무너졌다. 내 여행은 글이 아니라 사람이었다. 내 여행은 홀로 추억하는 것보다 같이 추억했을 때 더 많은 것을 기억하고, 추억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과 그때를 추억할 땐 나 혼자 생각할 때보다 더 선명하고 아름답게 빛났다.
난 여행이 삶에 색을 선물해 준다고 믿는다. 더 풍요롭고 다채롭게 묘사할 힘을 주는 것이다. 그리고 이 문장은 함께 추억할 누군가가 있다면 더 선명하게 빛났다. 내가 그때, 그곳에 있었을 바로 그때, 함께 추억할 수 있는 건 그 자리에 같이 있었던 사람들뿐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을 각자의 시각으로 얘기하면서 난 그들의 색을 한 번, 두 번 더 입힐 수 있었다. 난 내 색깔로 세상을 본다. 그리고 그걸 세상이라 믿는다. 내 글엔 내 색깔만 존재한다. 그런데 사람은 각자의 색이 있으니 비교할 수 있다. 여행과 사람은 뗄 수 없다.
종종 여행의 순간을 함께 했던 사람을 만나 그 순간으로 풍덩 빠져보면 흥미롭다. 내 기억과 그의 기억이 다르다. 내가 순간을 기억한 방식이 그의 세상에선 전혀 다른 문장으로 기록되어 있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여행은 글이 아닌 사람이란 걸, 그때 인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