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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포인트 Aug 01. 2023

실패에 도전하는 돈과 사람들의 이야기

벤처-투자 생태계 다큐멘터리 '베팅' 제작기

BETTING : 실패에 도전하는 돈과 사람들의 이야기

벤처-투자 생태계 다큐멘터리 <BETTING> 제작 노트



복잡하지만 꼭 필요한 이야기, 우리가 풀어낼 수 있을까?


처음 블루포인트와 다큐멘터리에 관한 미팅을 했을 때, 당연하게도 블루포인트를 홍보하는 브랜드 콘텐츠라고 생각했다. ‘투자 회사의 광고는 어떻게 만들어야 하나’ 그런 고민을 갖고 블루포인트를 처음 만났다.


“투자 산업과 스타트업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어요.”


첫 미팅을 마치고 당혹스러운 마음과 함께 회사로 돌아왔다. 벤처 산업과 스타트업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다는 이용관 대표님의 말씀이 답 없는 문제처럼 느껴졌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특별한 사건을 다루는 것도 아니고, 베일에 쌓인 어떤 인물을 추적하는 것도 아니고, 벤처라는 거대한 산업의 전반을 다루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기왕 만들 거면 많은 사람들이 재미있게 볼 수 있는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야 하는데, 이 산업에서 그런 이야기를 발견해낼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다.


당시 미디어에서는 연일 ‘2차 벤처 붐’이 왔다며 실리콘 밸리의 성공 사례와 새로운 기회를 이야기했지만, 투자 유치 실패나 폐업하는 스타트업에 대한 기사 역시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사상 최대치를 기록한 스타트업 창업’과 ‘스타트업, 5개 중 4개는 망한다’는 기사가 동시에 눈에 띄었다. 더불어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동학개미운동’과 무분별한 투자로 막대한 손해를 입은 개인투자자들의 이야기 역시 심심하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2차 벤처 붐’을 타고 산업은 점점 커져가는 반면에, 나와 같은 일반 대중이 얻을 수 있는 유의미한 정보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이 산업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혼란스럽기만 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좋은 정보는 부재한, 혹은 어떤 것이 좋은 정보인지 알 수 없는 산업’


그것이 우리가 바라본 벤처 업계와 투자 시장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어쩌면 나와 같은 사람들이 이 산업과 시장에 바라는 게,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 정보들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산업 안에는 자유경제시장에서 돈에 대해 누구보다 밀접한 사람들이 있으니까. 그 사람들을 통해 이 산업이 비밀스럽고 혼란스럽게 느껴지는 이유를 찾고, 벤처 산업과 투자 시장의 의미를 찾아 전달해보면 좋을 거라고 생각했다. 모두가 재미있게 볼 순 없어도,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했던 괜찮은 이야기들을 전달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생태계


본격적인 촬영에 들어가자마자, 이 산업이 왜 이렇게 혼란스럽게 느껴지는지 곧바로 알 수 있었다. 분명 촬영을 준비하던 시기에 보았던 벤처 산업과 투자 시장은 호황의 정점이었다.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유니콘 스타트업과 몇 백억 단위의 투자 유치 성공 사례, 그런 것들이 한 순간에 위기로 다가왔다. ‘스타트업, 파티는 끝났다’는 제목의 기사가 월스트리트저널의 이름을 타고 빠르게 확산되는 것을 목격했고, 유망했던 스타트업들의 기업 가치에 대한 의문이 잇따라 제기되었다.


‘20년 전의 닷컴 버블이 다시 찾아오는 것 아닐까.’


벤처 기업을 향한 비이성적 낙관이 가져온 과거의 벤처 투자 열풍과 몰락이 다시 반복되는 건 아닌지 의문이 들었다. 떠오르는 위기론으로 인해 업계 분위기는 좋지 않았지만,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입장에서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이런 의문에 직접적으로 대답해 줄 여러 사람들을 만나는 중이었으니까 말이다. 이 때의 고민과 질문, 대답을 시리즈의 첫 번째 에피소드인 <붐과 버블>에 담았다.




시대가 필요로 하는 기술과 아이디어


인터뷰를 진행했던 스타트업 중에는 ‘직방’이나 ‘원티드’와 같이 누구나 알 수 있는 기업도 있었지만, 이제 막 궤도에 오른 스타트업이나 아직 기술만 존재하는 스타트업도 여럿 있었다. 뚜렷한 결과물이 없는 상태에서, 혹은 아이디어만 있는 상태에서 그들이 창업을 하고 투자를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여러 이유가 있지만 ‘지금 이 시대가 필요로 하기 때문’이라는 답변이 기억에 남는다.



"너무나 유망한 분야이지만 대기업이 쉽게 뛰어들 수 없는 이유는, 

대기업에서 진행하는 현재 사업과 정 반대 선상에 있는 사업이기도 하거든요. 

이 시대나 사람들에게 꼭 필요하지만 대기업에서 할 수 없다면 스타트업에서 해야만 한다고 생각해요."


소풍벤처스 ㅣ 한상엽 대표



두 번째 에피소드인 <산 너머 산>에서는 우리 모두가 겪고 있는 문제를 다룬다. 투자자들이 그 문제에 주목하는 이유, 자본과 인력이 충분한 대기업에서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이유, 대기업이 도전하지 못하는 분야에서 성과를 내고 있는 스타트업의 이야기를 담았다.





투자자와 스타트업, 돈의 역할


다큐멘터리를 기획할 때 가지고 있었던 목표 중 하나는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인터뷰 하는 것’이었다. 산업에 대해 말하려면 그 산업을 형성하는 수많은 이해관계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봐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렇게 30여 명에 이르는 투자자와 스타트업을 인터뷰 했고 각자의 실패와 성공에 대한 이야기, 산업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과 의견을 들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투자자와 스타트업이 서로를 이해관계자로 바라보지 않고 있다는 점이었다.


"스타트업은 이 세상에서 아직 해결되지 않은 어떤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아이디어와 기술이 있다면, 

투자자는 그 아이디어와 기술이 이 세상에 나올 수 있도록 스타트업을 서포트해주는 존재거든요."


카카오벤처스 ㅣ 정신아 대표



이 답변을 듣기 전까지, 나는 그들이 이 산업에 존재하는 이유가 단지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주식 투자를 하는 이유, 내 주변인들이 창업 전선에 뛰어든 이유를 보면 그렇게 생각하는 게 당연했다.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입장에서 어떤 답이나 입장을 선택하고 접근하는 걸 경계해야 했지만, 어떤 산업보다 예민하고 냉정할 것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다. 인터뷰를 진행하며 실패에 대한 두려움 없이 불확실성에 도전하는 이유, 이 업계에서 돈이 지닌 의미를 발견했고 그 모든 이야기를 마지막 에피소드인 <위기를 기회로>에 담았다.


 



 3편의 다큐멘터리를 통해 바라본 벤처-투자 시장


<BETTING>은 22년 1월에 기획에 들어가 23년 4월 마무리되었다. 이후 후반 작업의 완성도를 더해 7월 21일 <왓챠>를 통해 공개되었다. 기획부터 제작, 온 에어까지 1년 6개월이 걸린 것이다. 만드는 입장에서 시간이 걸리더라도 재미있고 밀도 높은 이야기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지금 시장 상황이 또 급박하게 바뀌는 건 아닐까?’ 하며 노심초사 하기도 했다. 그만큼 시의성이 중요한 다큐멘터리라는 생각이 들었고, 아쉽게도 몇 개의 사소한 내용들은 현재의 상황과 조금 벗어난 부분들도 보인다.


그럼에도 유의미하다고 생각하는 건, 매우 빠르게 성장하는 벤처 업계의 모습과 더불어 이 업계를 형성하는 사람들이 과거와 달리 매우 성숙한 태도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 다큐멘터리를 통해 보여질 수 있겠다는 점이었다. 산업을 형성하는 사람들이 정의하는 자신의 업, 투자자와 스타트업 그리고 돈의 가치와 역할에 대한 여러 의견과 이야기를 듣는 시간들이 업계 바깥에 있는 나에게도 매우 유익했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의 벤처 시장에 대해 모종의 기대감을 갖기에 충분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울러 이 다큐멘터리가 비밀스럽고 혼란스럽게 느껴졌던 벤처 산업과 투자 시장을 사람들과 조금 가까워지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기대감이 있다.




Written by 김봉준

몽규의 Creative Director.

벤처 투자 생태계 다큐멘터리 <BETTING>을 감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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