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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한 사람 03화

이런 사람은 결국 떠나요, ‘왜 왔는지?’

- ‘사람‘의 이유란...


이것은 슬픈 사랑의 이야기이다.

‘한 사람‘에 관한 기억이지만

모든 기억이 그렇듯이

여러 기억이 뒤섞여 있다.


한 밤 잠에서 깨어나 ‘그 이는 내게 무슨 생각으로,

도대체 왜 그런 걸까?‘라는 생각에

나머지 잠을 설치게 해 주는,

그런 ‘사람 기억’에 해당된다.





가지 않은 길과 반대급부의 상관관계



개인에 관한 정보를 유독 알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디 살아요?”, “결혼했어요?”, ”몇 학번이세요? “

이런 파고드는, -예전엔 인상 쓰게 했던- 질문들이

나로 하여금 외면은 웃으면서도

속으로 ‘왜 묻지?‘라는 생각과

‘어머, 이 사람은 조심해야 돼.‘라는 경계심을 그에게

갖게 한다.


그런데 친해지면 어떤가.

내가 먼저 이야기할 수도 있다.

또 이야기 중에 섞여 나올 수도 있다.

‘대학을 어디 나왔는지 ‘, ‘부모님은 계시는지 ‘와 같은

추가 정보도 얘기하고 있는 나 자신을 본다.


내게 말을 해 보라고

자기 얘길 해 보라고

자꾸 채근하는 사람이 있었다.

원래는 부담을 느끼곤 했었다.


‘친해지면 용서가 된다.‘고 했던가.

그와는 자주 보며 현안을 논의하는 사이가 됐고

내가 잘 모르는 분야의 해박한 지식들로 해서

그의 말을 경청하고 존중하려 했다.


일 년이라는, 빗장을 푼 시간이 흘러가며

그러나 그의 말을 더 이상 들을 수 없게 되자

내가 있는 그대로의 상황을 설명했다.

설명이라 해 봤지만

이야기하는 내내 무거운 분위기가 이어졌다.


나는 이야기는 이야기일 뿐이지만

다시 그와 내가 시간을 내어 만나는 일이

더 이상 있을 수 있을까를 우려 속에 짐작하려 했다.

짐작대로 그날 이후 그는 내게

말을 걸어오지 않고 있다.


나는 그 길을 가지 않길 선택했고

반대급부로 다시 그와 연락해서 만나지 않게 되었다.






인간의 욕심이 그렇게 만든 것이리라.



욕심이 없는 사람은 없다. 자기 자신을 뛰어넘는다는 건 실제론 불가능한 일 같다.


사람의 마음은 묘한 것이라

쉽게, 작은 조건 변화에도 바뀌며

심지어 냉장고 안에 두어도 상하는 음식에 비견된다.


내가 잘 모르면 남에게 쉽게 현혹된다.

그와 같이 여기저길 쏘다니며

보고 의논하길 계속했다면

그냥 거기 머물렀으면

지금쯤 어떻게 됐을까.


그는 제삼자에게 나를 가리켜 자신의 ‘팬‘이라고

소개하곤 했는데

그 와중에 나는 나의 지식을 쌓고 있었고

점차 상황 판단에서

그와 의견이 갈리기 시작했다.

그와 마지막으로 보던 날,

나는 속에 있던 말들을 어렵게 꺼냈고

핵심은

그의 제안을 내가 종당엔 거절한다는 것이었다.


책을 많이 읽다 보니 나도 모르게 앎이 확장됐다. 사용한 책갈피들.


무거운 분위기가 깔리면서

말이 끊겼다. 내가 그의 말을 잘 따르고

우리의 박자가 같았을 때는 그런 적이 없었다.


일어나 집으로 돌아오면서

‘그는 나에게 왜 그런 것인지 ‘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일부러 그랬든지, 모르고 그랬든지



그것은 ‘공동’으로 투자하는 안이었다.

프로젝트로 치면 난이도 ‘상‘에 가까웠다.

‘나‘를 넣어 ‘그’를 살리는 프로젝트였고 심지어

이익은 분배한다는 내용도 들어 있었다.


많은 일들이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데에는

무조건적 추종과 맹신이라는 원인이 있다.

전문성, 경력, 사회생활 경험이 차이가 나면

결정권을 내어 준 쪽이 끌려가는 경우가 생긴다.

‘맞겠지.’, ‘어련히 알아서 했을까.‘와 같은

자기 책임을 미루는,

또는 일방을 밀어주는 습관

한몫을 한다.


그는 내게 왜 그랬을까?

한동안 알아 내려고 해 봤다.


세상이 변한 것, 아예 인간 생활의 패러다임이 바뀐 것을 그만 몰랐을까?

알면서도 자신이 쉬운 길을 가려고 나를 메어 놓으려

했던 걸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남의 속 마음은 알 수 없는 영역이다.


직장에서도 해마다 힘의 서열이 정해지고

운동하려고 만난 그룹에서도 점수의 순위를 매긴다.

개개인 간에도 결정권자가 따로 있는데

여기서 유의할 것은, 호혜롭지 못하거나

한 측만을 위한 결정 사항이 되어선 안 된다는 것이다.


그의 말대로 했었더라면 지금쯤은 크나큰 후회를

하고 있을 것이었다.

시간을 투입해서 오는 결과물이

대단히 큰 성과가 된다고 하지만

영혼까지 끌어모아서

눈앞에 그려지지 않은 그림에 올인하는 것은

정확한 판단과 객관적 검증에 의했을 때라야지

오직 관계(Relationship)에 이끌려서나

막연히 잘 되리라는 ‘믿음 아닌 믿음‘,

상상에 의거해선 안 된다.






더 잘해 주지 말 것



나보다 남을 배려한다는 일이

후회를 남기는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그 일을 통해 알았다.


남에게서 한 가지 혜택을 받으면

반드시 더 큰 것으로 되돌려 주려고 생각했었는데

응분의 것으로 잘해 주면 족하다는 걸 알았다.


사람이 귀중하고 인연이 소중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어떤 사람은 내게서 정보를 받아 가고자, 혹은

내 능력으로 자신의 부족점을 메꾸고자 다가온다는

것을 알았다.


먹을 것을 나눠 먹고 차를 같이 탈 수 있는 사람은

많다. 그랬다고 해서 누구나

공동의 비전을 갖고 동업을 하는 등

가진 돈을 섞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거의는 못 한다.


앞서 말한 그가 내게 올 때부터

‘이 사람을 통해서 (자기) 손실을 메꾸고 이익을 챙겨야겠다.’고 마음먹었는지는 모를 일이다.


다만 아직도 그가

내가 자신의 마음을 몰라 주었다거나

기왕에 약속한 일을 이행하지 않아 피해를 입었다고만

생각하고 있지 않았으면 좋겠다.


과거에 잘했다고 지금 다 잘할 수는 없다.

과거에 문제를 잘 풀었다 해서 지금도 정답을 맞힐 수

있는가? 나는 조금만 시간이 지난 해법으로라도

현실의 문제를 잘 풀 수가 없다고 느낀다.


그래서 트렌드를 공부하고 따라잡으려는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자칫 잘못, 남에게 한 마디 디렉션을 잘못해서,

사랑하는 가족에게 걱정 담은 조언 한번 그르쳐서

그 인생에 큰 굴곡을 줄 수 있다는 생각에


직업상 커리어로나 개인적 삶에서나

늘 유의하고

내 낡은 시점을 까딱 하면 바꿀 수 있는

유연한 태도를 갖고 살아가려 한다.


오늘 또 이렇게

예상치 못했던 어느 한 사람이

내 인생의 일만칠천 여 명 중 한 명으로 왔다가

모종의 사유로 자기 동굴 속으로 돌아간 썰 풀었다.


‘어떤 사람을 언제 만나느냐 ‘는

삶의 중요한 문제인 것 같다.



sticker sticker


(저의 이번주 ‘사람 기억’ 정리에는

좋은, 정말 뛰어난 글솜씨와 감각, 통찰을 보여 주시는

선배 작가님들의 글을 많이, 저대로는 최대한 많이

읽고 기운을 얻은 바가 컸습니다. 예컨대 글 말미,

동굴‘이란 말이 나온 데는

존경하는 부소유 작가님의 좋았던 글 :


https://brunch.co.kr/@golvangelion/486


위 글을 읽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같은 ‘초짜’가 계속 브런치에 있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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