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존 ‘사람’의 상처를 보듬다.
통상 해가 바뀔 때라던지 명절을 맞으면서
주변 사람들에 대한 인사 겸 요식행위로
간단한 선물과 함께 보낸 카드는
어느 날 뜻밖의 사진과 함께 답문이 도착할 때까지
나 자신 잊고 지낸다.
선물로 보낸 소량의 과일 세트를 배송받고
그 ‘한 사람‘이 겉보자기를 풀어 사진을 찍어 보냈다.
고맙다는 말과 함께.
그 한 분을 포함한 몇몇 분에게 비슷한 걸 보냈지만
그렇게 피드백을 준 사람은 없었다.
작은 정성이 크게 돌아오는 순간이었고 내가 오히려 감동되었다.
그 ‘한 사람‘은 그 명절 전후로나 지금까지
동일하게 의뢰한 같은 사무에 대한 처리가 남달랐고
그때마다 감동이 조금씩 높아지고 있다.
사람마다 “나는 좀 쎄(세)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고
“나는 심지가 약해.” 하는 사람이 있고
그리고 중요한 건
누가 쎄(세) 면 누군가는 약해진다.
그런데 생활하다 보면 그게 또 뒤바뀌는 때가 있다.
실로 어려운 상황, 문제가 꼬인 상황에서
평소 말 많고 자신 있다던 사람이
위기의 순간에 쪼그라들어
존재감을 잃어버리고 말이다.
위의 과일 몇 알을 ‘잘 먹겠다.‘고
누구도 그렇게까지 하지 않은 사진 촬영을 해 보낸
그 ‘한 사람’이 내게 좀 더 소중한 인맥으로
와닿은 모습도
그런 모습이었다.
작은 일도 놓치지 않고 하나하나 짚었고
틀리지 않았는지 아는 것도 확인해 보고
회신해 주었다.
전반적으로 나의 덤벙거리는 일 처리를 돌아보게 했고
내게 온 사람을 귀찮아하며 돌려세우지 않았던가를
곰곰이 생각하게 해 주었다.
말 한마디가 뇌리에 각인된다.
며칠 전 그 오랜 시간 이후 최초로
긴히 사람을 만나고
전부는 아니지만 빗장을 약간 열어 보았다.
육 개월 전쯤 같은 모임에 참석할 수 있는지
제안을 받았지만
이유를 만들어 살짝 비켜났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고
맛집에서 시작된 여러 이야기보따리가 하나하나
찻집으로 이어지며 풀어져 갔다.
내가 얼마나 오랜 시간을 혼자 생각하고 답을 구해
왔는지가 느껴졌고
밋밋한 생활을 영위했는지가 서서히 실감이 됐다.
이야기가 무르익는다고들 하는 시간이 되었다.
‘한 사람‘이 만면의 웃음을 지으면서
했을 때 내 마음의 많은 빗장이 풀려 나감을 느꼈다.
운명의 순간에 지금의 짝꿍을 만난
아름다운 시작에 대해
두 눈과 두 귀를 반짝이고 쫑긋 해서
우리가 듣고 말할 때
사실 우리는 일 년 간 묵묵히 일을 같이 했다.
하지만 개인적인 시간을 헐어서 사담을 나눈 적은
처음이었다. 나로선 엄두가 나지 않은 것이기도 했다.
‘OO은 해치지 않는다.’고 하는 말이
인간관계의 확장에서는 내게 적용되지 않고 있었다.
오늘의 커버 사진은 네이버 블로그에서 가져온
tvN 드라마 ‘나의 아저씨(2018년)‘ 마지막 회의
이지안(아이유 분)의 모습이다.
나는 오늘의 연재를 위해 며칠간 조용히 묵상하고
아직 사람들 속 ‘나‘는 어색하기 그지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사람 속에서의 ‘나’를 나는 여전히 상상하기 어려워
하고 있다.
저 드라마 속 마지막 회에서의 극 중 이지안의 모습이
내겐 아직 슬퍼 보였듯이
단지 새로운 동료, 인간관계, 만남 안에서
‘나’를 정립하고
배척과 미움을 받을까 봐 느끼는 불안을 떨치려 할
뿐이다. 그리고 불안으로 나를 이끄는 것은
무엇보다도 나 자신의 마음 자체이다.
다시 일어서서
사람들 속에 들어가려고 할 때
과거의 일이 다시 재생될까 봐
나를 계속 혼자 있게끔 가두는 것도 내 마음이다.
나는 급격하게 상태가 좋아지지도,
드라마틱하게 사람들 속에 옴폭 들어가지 지도 않는다.
다만 용기를 내는 순간이 있을 뿐이며
자신이 원래 가진 따뜻하고 긍정적인 마인드로써
내 손을 잡을 것이다. 그런 식이 될 수밖엔 없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