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직 한 사람이 필요했던 나 자신을 버린다.
‘한 사람‘이 내 인생에 오는 과정은 밤에 오는 손님과 같았다. 예전엔 도둑을 ‘밤손님‘이라고도 했으니 그렇다고도 하겠다.
그토록 자주 와서 그토록 마음을 나눠서 훔쳐 가면
내 마음이라고 해서 그것을
다시 찾아오기도 뭣 하게 된다.
그는 그렇게 매일 볼 수 있는 사람이 되어
매일 이야기를 듣고 갔다.
처음엔 그가 ‘한 사람‘이라고는 나 자신 콧방귀를 뀌었지만
시간이 흐르고 흘러서
서로와 있으면 먹고 마시고 행동하는 모든 일에
규칙이 생겨 나고
규칙대로 행해졌다.
서로가 함께 한 끼니가 몇이나 될까 싶어서
같이 세어 보았는데
‘일 년의 절반은 넘지.’ 하고는 셀 수가 없었다.
그가 있는 자리에서 내가 털어놓은 이야기가
쌓이면서
그와의 사이엔 새로운 변곡점이 늘어갔다.
우리가 밥을 먹고 반주를 같이 나눠 마신 후에도
이야기가 끝나지 않고
각자 집으로 돌아온 후 자잘한 일을 챙겨 놓고는 다시
‘통화할까?‘ 하면 꽤나 긴 이야기가
그것은 마음대로 되지가 않아 보면 알 수 있다.
살아 보니 나는 또 잘 빠져드는 편인 것 같았다.
‘한 사람‘에게 주는 마음을 넘지 못한다.
원래가 사람은 자기 마음이 제일 귀중해서
남에게 호락호락 퍼 담아 주고 그런 식으로 하지 않는다.
그를 만나는 시간이 많아지자
다른 사람을 만날 시간이 줄어들었다.
어딜 가도
‘내일 뭐 해?‘ 하면 곧바로 일정이 공유됐고
시간만 나면 같이 다니는 일이 많아졌고
헤어질 시간이 되면 마음이 미어지는 일이 생겼다.
서로가 부담을 느끼기 시작한 순간이 아니었나 싶다.
그때는 원치 않게 먼지와 같이 마음을 어지럽히는
미세한 소요가 일어난 차례였다.
그때 그가 말한 것처럼
‘같이 사는 건 아닌’데
‘같이 사는 것처럼’ 군 게 화근이었다.
소요에 최적화되지 않은 우리의 만남은
이상하게 튜닝이 안 맞기 시작했다.
그가 제일 편하다고 생각하고 마음을 놓은 건
‘착각’이었을까 아직도 모르겠다.
그게 착각이었으면
어디서부터 잘 못 되었는지 알아야 하는데
종잡을 수가 없어서
그렇게 되어 버린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사소하게 서운함이 쌓여도
말을 그때그때 할 수가 없었다.
그러기엔 고마운 일이 많이 있었고
오랜 시간
그가 ‘한 사람‘이 되어 곁에 있어 주었기 때문에
인생의 큰 다리를 넘어올 수 있었던 점은
인정해야 했다.
나라고 해서 사람의 가치가 늘 고양된 상태로만
남과 만나지지는 않는다.
그리고 사람이 편해지면 순간의 경계를 풀고
최대한 자유분방한 모습을 보이면서
‘내가 이러면 어쩔 건데?‘ 하는 내적 반항도
제법 늘어간다.
돌아보면 미안한 일인데 그 당시엔 그걸 모른다.
그걸 또 ‘귀엽다 ‘고 봐줘 버릇하게 되면,
어떤 사람도 내 방종을 봐주는 사람이 싫어지거나
멀리 하고 싶어지지 않고
오히려 그 반대이다.
어차피 그는 나의 ‘한 사람‘인데 하고
볼멘소리를 늘어놓아도
받아 주기 시작하면
나는 그만 정들어서 어쩌지 못하고
그도 정을 떼지 못하는 단계에 이른다.
과연 우리가, 사실은 내가
그의 영향을 얼마나 받았을지를 생각해 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나의 제스처, 예컨대 말을 할 때의 손짓,
열을 올리는 순간의 몸짓이
아예 ’ 그의 것‘에서 유래된 지 오래다.
너무나 많이 보았으며
시간을 함께 했고
다른 이와 비할 수 없이 가깝게 생활했기에
당연한 결과로서
우리가 함께 한 시간이 참 길었다.
그리고
함께 한 시간 너머로
이제는 함께 하지 못할 시간이 주야장천 남아 있다.
우린 다른 사람이었다. 원래 낳은 부모도 달랐으며
자란 고장도 달랐고
생각머리까지도 완전 달랐다.
그럼에도 스며든 우리가
서로의 생활에 물들고
공동의 취미와 관심사에 빠진 시간은
어쩌면 우리가 가장 힘든 때였고
같이 손을 맞잡고 터널을 빠져나온 것이다.
어떻게 인생에서 각자에게 주어진 길이 같겠어?
이제껏 함께 올 수 있었다는 사실에 감사하다.
누구도 우리만큼 밀접할 사이는 없을 것이다.
나를 붙잡고 울리는 말도 없었다.
그가 있으면 역경 속에서도 웃을 수 있었다.
그땐 짐작도 못 하고 살았다.
다른 숙제들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학교 다닐 때는 한 반이라면 모두 같은 숙제를 하곤
했었는데 말이다.
이래서 학교는 실제와 다르다고 하나 보다.
물론 ‘한 사람‘이 준 안정은 너무나 큰 것이었다.
하지만 ‘한 사람‘으로 해서 불안이 큰 것도 사실이었다.
나는 그가 어느 날 죽어 버릴까 봐 몹시도 걱정이 됐다.
사람의 수명에 평균이라는 것은 없지만
그는 아직 연한이 많이 남았는데도 말이다.
그가 ‘한 사람‘으로 픽스되면서
초래된 불안일 뿐이었다.
안정과 불안을 동시에 준 ‘한 사람‘이라는 무게는
나를 크게도 바꾸어 놓았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다.
세상 모든 인연이 말없이, 정말 이유도 없이
왔다가
무수한 사연과 저마다의 이유로
간다.
그러니 보낼 수밖에 없다.
서로 고생이 많았다.
우린 많이 달랐다.
물론 영향도 많이 받았다.
그러기 위해선 애정이 컸던 것 같다.
주고받은 영향이 ‘선했는지 ‘는 그와 의견을 맞추어야 알 수 있는데
이 문제만큼은 맞추어 볼 기회가 없을 것 같다.
그리고 예전만큼은 그게 슬프지 않다.
더불어서 ‘오직 한 사람’이라는 명제에
헌신했던 나를 같이 보낸다.
사람을 만날 수 없을 것 같다.
https://www.youtube.com/watch?v=5KWtCfKSZWk&list=RD5KWtCfKSZWk&start_radio=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