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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립스틱 짙게 바르고 Feb 21. 2024

12. 너무 흔들리고 다 내려놓고 싶은 날

- 민원인의 전화를 응대하고 뭉클했다.



그래서 또 때려치지 못하고


“열심히 준비하겠습니다.”


이렇게 약속하는 나의 목소리가 기어들어가고

수화기를 내려놓으면서 드는 생각


‘나 혼자선 안 되는데’


움직임이 없는 사회,

근성만 강한 사람들.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속성을 공유한 집단.

그 속에서 나는

무엇이든지 손에 잡으면

움직이고 변화를 주고 싶었다.




뭉글뭉글 피어오른 바램은

그저 “정상화”.



기업과 민간은

수요에 민감하고

때로는 선도해서 수요를 창출한다.

트렌드에 발빠르게 반응하기 위해선

제살을 깎고 뼈를 맞추어야 한다.


수요자 중심으로 방향을 세우기 때문인데

그래야 수익을 내고 기업이 존립하기에

어려움을 뚫고 앞으로 나아간다.


내가 속한 조직은, 공공은

그렇지 않았다는 게

가장 안타깝고 아프다.


모든 게 연장선에 있어야 했다.

내가 해 온 일, 내가 할수 있는 일의 연장선.

자기 틀을 벗어나지 않는 일만 수행하려 했다.






세상은 다른 곳으로 가는데

사람들은 다양성을 바라는데



공급자인 ‘우리’가 그것을 줄 생각이 없었다.


코로나 이전과 이후는 명백히 달라졌다.

집에서 일하고 집에 남아서 공부한 사람들은

집과 사회를 다른 관점으로 보기 시작했다.


'우리'에겐

바뀐 수요자의 니즈에 맞게끔

사업을 구상하고 입안하고

연간 주도적으로 집행할 예산과 책임이 있다.


코로나 때 평소 생각지도 않던 마스크를 구매하여

단위마다 배포했다면,

지금 다시

출근하고 출석한 시민들을 생각해야 했지만


개개인의 요구와 특성에 기한 발상을 해야 했지만


코로나만 끝났지

‘우리’는

바뀐 게 없다.


그 결과

힘 없고 말 없는 사람들은

‘우리’가 수동적으로 관행을 반복할 때

정책의 수혜 그룹에서 열외되는 것이다.


잘 하고 잘 사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그들이 말부터도 딱 부러지며

정확한 요구들을 가져오기 때문에

그만큼의 공급이 이루어진다.


문제는


 ‘최하층에 속한 힘없고 스트레스 받는

- 도서 “12가지 인생의 법칙“(조던 B. 피터슨)에서

만난 수식어 -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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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못 사는(하는) 사람들이

잘 살(할) 수 있게



해야 하건만


늘상 잘 하는 쪽이  잘 할 뿐이다.


잘 하는 사람들이 잘 하는 것은

공무 집행과의 상관관계가 희박하다.

‘우리’가 해 주지 않아도

그들은 알아서 잘들 살아간다.


그런데도 다들

잘 하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잘 사는 지역으로만

다음 자리를 원하고


기관을 이끄는 수장들도 그렇다.


아니, 오히려

위로 올라갈수록

선택권이 넓을수록

인맥이 탄탄하면 그럴수록

상부에서 유능함을 빨리 인정할수록


그의 자리는 가난한 사람들에게서 더 멀다


흙수저들의 리그를

치닥거리하는 업무를

가볍게 대충대충 여긴다.

“그들은 의욕이 없고 의지가 없다.”고 한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이 더 가난해지고

발전이 정체된 지역이 더 정체된다.






공정도 혁신도 없다.



제목만으로 꽂힌 영상, 아직 시청하진 않았지만..



공정하지도 않으며

혁신되지도 않는 것

그게 특징이었다.


90%의 사람들에게 필요하지만

'우리'에겐 일을 해서 받쳐 줄 생각이 없다


매뉴얼에 있어도 차일피일인데

있지도 않은 일은 하지 않는다.

그것이 약자를 위한 일이라면 더더욱.


모든 것이 주는 사람 마음이다.


로봇과 자율주행으로 급변할 시대에

오로지 지켜지는 공급자 중심주의의 살얼음판에서

정상적으로 ‘일’을 만들고 한다는 것이

너무나 힘들었다.


공정도 혁신도 물론 없지만

무엇보다도

일을 우선순위에 둘 수 있는 열정이

저마다의 이유로 사그라든 사람들이 만나서


갈등을 겪다 어느새

힘의 우위에 선 자가 약자를 밀치고

"내가 안 그랬어요."라면서 손을 떼는 일이

반복되다 보면


사람을 봐도 편 가르기부터 생각한다.


저 사람이 누구랑 친했지?


후회는 하지 않지만 상처가 크기 때문이다.

열심히 일하다가 다친 나에게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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