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간절함 One, Two
계단에서 인사팀 직원을 만났다.
나는 그 때 힌창 ‘먹히지’ 않는 중이었고
잔뜩 위축되 있었다.
그 모습을 본 그녀가 내게 굳센 발음으로 말했다.
“그러니까 힘내요 성대리.”
불끈 힘이 났고 마음은 뭉클했다.
‘됐지, 한 명은 알고 있으니까.’
자잘한 이야기들을 나눴고
이후로 그녀와는 서로 안부를 묻는 관계가 되었다.
그녀는 자신의 마음 속에 떠오른 한 마디를
내게 뱉어 놓았을 뿐이지만
사면초가였던 나에겐
단비처럼 간절한 한 마디였다.
치마자락을 흩날리며
내 앞길을 흩어놓았던 그녀들,
거기에 일언반구라도 논쟁하지 않으려고
내게도 문제가 있다라면서
나의 ‘자세’를 문제시한 나머지 사람들.
나는 포위되어
앞이 보이지 않았었다.
비록 직렬은 달랐지만
입방아에서 자유로운 이,
티를 내서 내 손을 잡아주었던 이는
그녀가 유일했다.
그때 나는 탈출을 꿈꿨다.
꿈인 줄도 모르고 푹 빠져서 꾸었던 꿈.
그런데 내가 간절하면 간절할수록
조직에서 만난 사람들이 쓴 색인경은
더 짙어졌다.
이 쯤부턴
일에서나 관계에서나
절대 유연함은 기대할 수 없었다.
무슨 좋은 취지도
아무리 낮은 자세도
소용없었다.
생각해 보면 사람들은
내가 빠져나간 조직에
자신들만 남길 바라지 않았던 것 같다.
나를 옆에 두고
계속 비난하고 험담해야 했을까?
그렇게 해서
나는 그들의 밥그릇 속에 남았다.
탈출에 실패한 바로 그 날로
냉엄한 현실과 마주해야 한다.
내 삶에 다른 어떤 선택지가 있다는 걸
알긴 아직 이를 때였다.
그때 만난 책임자들은
내가 탈출할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알면
맘껏 나를 다루어도 된다고 생각했고
맘껏 내 능력을 조롱했다.
그 때 나는 내 꿈에 너무 진심이었기 때문에
기피 업무에 기용되더라도
부당한 말을 듣더라도
그게 모욕적이라고 느끼면서도
내가 이용당하는 줄 몰랐다.
시간이 흘러서 보니
그 당시의 내 상황이
풀리는 것 없이 꼬이기만 한 것은
나의 간절함을 남에게 들켰기 때문이었다.
티를 내고 드러내서 아는 게 아니라
소문과 추측이 난무하고
개인에 관한 일을 아무 데나 흘려 주어도
반박할 수 없는
상하 위계가 강한 조직 특성상
도대체 비밀이란 게 지켜질 수가 없었다.
나의 수를 읽힌다는 건
수영장에 물이 빠지고 난 후 드러나는 맨몸과 같이
속수무책이 되 버린다.
프레임이란 비난하고 깎아내리고 싶어하는
마음이 맞는 사람들끼리
공통된 이미지로 사건과 사람을 보기 위해
만들어 낸 틀이다.
한번 맞춰지면 계속 아니라고 주장한들
빠져 나올 수는 없다.
내가 조직 생활을 하는 동안
사람들이 내 의사에 반한 프레임을 걸어서
나를 넘어뜨리고 도리어
넘어진 사람에게 탓을 돌려서
그 사람이 상할지언정
나중엔 내가 프레임인지, 프레임이 나인지
닭인지, 계란인지, 뭐가 뭔지
쌍방이 어물쩡 넘어가면서 고착된다.
내 발로 조직을 걸어나가기 전까지
얼룩덜룩한 이미지는 바뀌지 않고
나는 후회하고 자책만 하다가
삶의 희망을 버릴 수 있는
문제적 문제가 바로
프레임이다.
나는 거기에 걸렸다
는 걸 인정하고,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다
는 걸 현실로 받아들였다.
살려면, 살아남으려면
내 소중한 삶을 완전히 전환해야 하는
힘겨운 싸움 과정에서
글을 쓴다.